평생 구순 구개열 한길 베트남의 슈바이처 신효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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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구순 구개열 한길’
베트남의 슈바이처
일단은, 77세까지 봉사하고 싶어요

전북대 ? 베트남 Hue대학 명예교수
대자인 치과 신효근 원장


#1.

1972년 본과 3학년 때 전북 도립의료원에 은사님과 무료로 시술을 해 주는 지원 사업이 있었어요.
학생 때 선풍기 부채를 부쳐가면서 환자들을 수술 했는데,
10살 된 여자아이가 국소마취로 수술을 하는데 울지를 않더라구요. 울지를 않더라구요.
견디는걸 보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저렇게 아파도 참을까 생각했죠.

그걸 보고서 나도 저런 환자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2.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매년 하는 얘기인데요.
요즘은 정말 심한 경쟁 사회이고, 의사도 많고 환자들의 상식도 늘어나고...
어느 치과에 가도 똑 같은 진료를 받는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경쟁에서 이기려면 정말 좋은 치료를 해야 하고, 자기가 환자가 돼서 치료를 받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얘기하죠.





Q 베트남의 슈바이처라고 불린다구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사실은 1995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일년에 두세 차례 베트남에 가서 아무 조건 없이 저희 경비를 들여서 진료를 하는데 모 신문사에서 동행 취재 하면서 그때 기사제목이 베트남의 슈바이처였거든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아주 영광스럽죠.

2002년, 베트남에서 2003년에 국민건강훈장, 2년전에 후에 대학 봉사때 훈장을 받아서 3번이 됐죠.
국가훈장을 3번 받은 외국인이 그렇게 흔치 않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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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베트남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어요?

은사님 때문에 시작했는데 그 분이 1960년대 초반에 비둘기부대에 군의관으로 계셨어요.
93년에 국교가 회복이 되고, 1995년에 같이 2주간 봉사를 하면서 정말 이런 환경도 있구나 싶고, 매번 봉사할 수 있음 좋겠다고 생각했죠.

베트남에서 환자만 모아주면 우리가 전액 무료로 치료하고 시설도 기증하고 오니까 그들에게는 정말 좋은 혜택이죠.
여기저기서 와 달라고 요청을 해요.
지금 까지 수술건수는 2천명 이상, 저 개인적으로도 600명 가까이 될 거예요.


Q 베트남에서 언어 청각사교육을 하고 있는데요.

구순구개열 수술을 하고 나면 언어적인 장애가 생겨서, 그걸 해결해야 하는데요.
베트남에는 언어 청각사 자격이 없어요.
마침 호주에서 사이공에 단기 교육과정이 생기고, 우리도, 베트남에 시작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후에 대학하고 상의를 했는데 코이카 에서 그런 과정을 모집 했고, 베트남 중부지방에 언어치료사 과정을 만들면서, 한해에 30명씩 배출하고 있어요.

2차사업으로 올해부터 3년간 동안 이어지는데, 올해부터 1차년도 사업이 시작 됐습니다.


Q 전북대 치과 대학에 언어치료학과를 개설하셨는데요?

병원에서 구순구개열 환자를 보면 입천장 수술을 한 아이들의 발음이 부정확하고 코맹맹이 소리가 나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이건 외과 의사가 수술을 잘못해서 그런 가 싶기도 하고..
그 후에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그렇다는 걸 일본에 가서 알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수술 후에 언어치료를 계속해 주는데 그걸 보고 와서 우리 대학에서 시작을 하게 됐죠.
91년에 팀이 만들어졌고 1994년에 대한민국 최초로 구강외과에 언어치료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때는 언어치료사 자격도 없었는데 대학 졸업한 학생들을 훈련을 시켜서 언어치료사 역할을 하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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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 당시 이런 어려움을 많이 느꼈나요?

거의 모르죠. 그건 수술 해본 사람만 알아요.
환자를 계속적으로 관리하는 과정에서 이런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그 후에 국가 자격이 됐고, 2014년에 언어치료사 국가 자격이 돼서 2급과 1급 시험을 보게 됐어요.
이제 의료보험이 되면 환자들의 혜택이 크게 늘고, 언어치료사 수요와 역할이 많아 질 걸로 생각됩니다.

뇌졸중, 실어증, 말더듬이, 언어발달 지진아, 중풍환자들의 삼킴 장애등등도 언어 치료사들의 역할입니다.


Q 전북대 교수는 몇 년에 부임하셨어요?

80년 12월에요.
병원은 경원동 옛날 의과대학 자리에 있었고, 그 당시 상황이 현재 지금의 베트남 상황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하심 됩니다.
베트남의 현재 치료실을 가보면 옛날 우리하고 비슷해요.

제가 교수로써 치과대학 발령을 두 번째 받았죠.
초장기에는 굉장히 어려웠어요.
진료과목도 구분이 안됐고 필요한 교수님도 안 계시고...
10년 정도 지나서 자리가 잡혔어요.
국립대학이라 정부의 많은 지원이 있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자리를 빨리 잡을 수 있었죠.


Q 교수로써 자부심을 느낀다면은요?

치과대학 초창기 멤버로써 학교를 이 정도까지 성장하는데 힘이 됐다는 게 자부심이고 보람 이예요.

구강외과를 만들고 성장시키고, 제 전공인 구순구개열 수술을 세계적으로 내 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키우고 유지 시킨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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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책도 쓰셨어요.

여러 권 썼어요.
제가 평생 해왔던 구순구개열을 정리를 해서 정년 할 때 발간을 했어요.
그래서 후학들이 많이 보고 있어요.

사실 구순구개열 환자는 한국에서는 많이 줄어들고 있어요.
한참 수술 할 때는 1년에 100명 정도 했어요.
정년 할 때쯤에는 일년에 30-명정도..,
지금은 더 줄어 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도 환자는 있을 거고, 치료하는 기술이 더 많이 축적되길 후배들에 바랍니다.


Q 의사로써, 교수로써 보람 있는 삶을 사시는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루고 싶은 것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병원 잘 하다가 왜 여기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지만 학교에 와서 많은 제자들을 기르고, 하고 싶은 걸 했던 게 정말 다행이고 행복했어요.

지금은 대자인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는데 학교와 달라서 처음에 적응하는게 어려웠고, 볼 수 있는 분야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좀 어려웠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잘 극복했죠.

임플란트 골정 등등 수술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봉사하고 싶고, 은사님은 77세까지 베트남에 가셨거든요.
제 일단 목표는 77세까지입니다.

그러나 손만 떨리지 않음 더 하고 싶어요.


*** 인터뷰를 마치고

“도와 주셔서”라는 얘기를 참 많이 하셨다.
총장님이 도와주시고 또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

베트남에는 아직도 화폐가 없는 곳에서 물물교환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순천 사는 어느 할머니는 몇 년 전에 KBS 9시 뉴스에서 베트남 봉사활동을 보시고, 통장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면서 매년 후원금을 보내주는데, 그런 분들께 또 감사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나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가 부총장 시절, 후배 교수의 갑작스런 급한 사정으로 생방송 의학 상담 출연이 어려울 때 회의 중간에 오셔서 방송 사고를 막아 준적이 있다.
그의 성실하고 훈훈한 인품에 환자들은 큰 위로를 받을 것 같다.
봉사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내가 환자라고 생각하면서 치료한다는 그를 정년 퇴직후, 대자인 병원 치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게 우리들의 큰 행운인 것 같다.


? 사진 동영상 : 多陽
? : 정하루 방송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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