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의료 사도직 실천자이자 교육자로 한평생 사셨어요?
수녀가 삶의 목표 였고 지금도 수녀여서, 더 행복하고 앞으로도 수녀로써 살다가 하느님께 가고 싶어요.
긍정적인 사고라고 할까 너무 수녀가 되고 싶어서 그랬는지, 하느님께서 저의 부족함을 채워 주시므로 크게 고민할 일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은퇴 후 지금은 프리랜서로 호스피스에 관련된 일을 주로 하죠.
호스피스 완화의료 관련 특강을 대학원, 병원, 성당, 교회 등에서 하고, 관련협회와 기관에서 자문도 합니다. 또 생명윤리위원으로 논문심사를 합니다. 수녀로서 기도생활을 하고, 옛날 호스피스 할 때 만났던 사별가족이나 봉사자들이 가끔 오시면 반갑게 맞고, 말기 환자 돌봄 요청이 오면 찾아 뵙고, 돌보고..
그렇게 여유 있고 한가로운 건만은 아니지요.
Q 호스피스 의료완화 하신지는 몇 년이나 되셨어요?
1971년 제가 근무하던 성모병원에 말기 암환자가 많이 왔어요.
가족과 환자를 보면서 수녀로 간호사로 정말 해 드릴게 없어서 무력감 안타까움도 느끼고, 나름대로 임종 간호를 적용하고 있었는데 34세 된 여자 환자가 시골에서 왔어요.
간암으로 복수도 차고, 그 당시 명동에 있었던 성모병원 7층에서는 성모님 동굴이 보였어요.
5월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장미꽃이 피어있고 주변은 평화로웠지요. 그분은 임종전이었는데 가서 노래도 불러주고 이야기도 해주었고..
떠나기 3일전인가 저를 보면서 손을 꼭 잡더니
“수녀님 너무 고마웠어요. 수녀님 만나지 않았으면 제가 이렇게 죽음 준비를 못했을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하늘나라 가면 수녀님 위해서 기도해 드릴 텐데 앞으로도 저 같은 사람 많이 도와주세요.”
돌아보면 그게 저와 호스피스와의 인연에 아마 첫 단추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Q 지금은 어느 정도 까지 단추를 끼웠다고 생각하세요?
제 개인적인 것 보다 우리나라 호스피스에 관련된 제도를.. 제가 유럽에서, 미국에서 호스피스 공부를 좀 했거든요.
호스피스 선진국에서 보고 배웠던 것들이 우리나라에 맞게 정착되고, 말기 환자이 떠날 때 몇 개월만이라도,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구별 없이 행복하게 삶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거든요.
호스피스가 많이 발전은 했어요.
호스피스 완화의료 까지 왔고 제도화도 되고 있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갈 길이 멀고, 혜택이나 재정적인 아쉬움도 많습니다.
Q 호스피스에 대해 소개 해 주세요.
호스피스는 라틴어로 손님맞이 장소라는 어원이어서, 환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따뜻한 환대 누구나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이에게..,
그 동안 대상이 암환자에게만 집중되었는데 법에 의해 확대 됐어요.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활동이고, 신체적 사회심리적 영적인 요구를 총체적으로 들어주고 충족시켜주면 삶과 죽음의 질을 유지 증진시키고 극대화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호스피스는 어둠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이야기예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마지막 꿈인 사진전도 주선해 주고.. 모두 호스피스가 할 수 있는 일이죠.
호스피스는 개인, 가정,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다가 행복하게 떠나게 하는 건강 사회운동, 행복운동 이렇게 강조하고 싶어요.
Q 호스피스 변천과정을 소개해 주세요.
우리나라는 1965년에 마리아 자매 수녀님들이 강원도 강릉에서 말기환자나 임종환자에게 호스피스 돌봄을 시작하였고, 80년대에 종교기관 특히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호스피스 병동이 생기면서, 봉사자들이 많이 나오고,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정착됐어요.
중요한 게 호스피스 전달체계에요.
병동형 호스피스, 독립형 호스피스, 가정형 호스피스, 요즘은 자문형 호스피스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병동 호스피스로 시작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외국처럼 독립호스피스 센터가 지역별로 거점별로 가까운데 있으면 입원을 한 다음에 또 가까운 가정으로 가서 가정 호스피스로 이어지고 낮 호스피스도 이용하고 가정자문형 호스피스까지.. 이런 전달 체계가 잘 이뤄지고 균형 있게 발전되어서 말기 환자들이 돌아가실 때 모든 분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더블린에 있는 수녀님들이 하시는 호스피스센터는, 그 곳 성모님 호스피스에 가서 죽는 게 천당문으로 가는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재정적,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하니까 큰 어려움이 없어요.
기부문화예요. 호스피스 데이가 있는데 어린이들도 인식을 할 정도고.. 우리나라에도 기부문화, 재정적, 제도적 호스피스 표준화가 많이 확대되고 질적, 양적으로 발전되어여 한다고 생각 합니다.
Q 성바오로 가정 호스피스센터는 어떻게 하시게 됐습니까?
간호대학 교수 32년 재직동안, 80년에 미국 가서 호스피스를 접한 후 국내에서 교육, 호스피스연구소, 협회와 관련된 일을 하였습니다.
제가 퇴직 후 수녀회에서 유럽에 가서 2년 동안 호스피스연수를 하도록 하였고 독립호스피스 센터 계획서를 내보도록 하섰죠.
남양주 불암동에 우리 수녀원이 있어요.
그 6천 평되는 아름다운 수녀원 안에 한 2층집에서 센터를 시작했죠.
후원도 받고, 가정방문도 하고 유럽에서 배운 걸 흉내 냈다고나 할까?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이런 분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이상적인 팀을 꾸려 가정에 있는 환자를 찾아가고, 낮 호스피스도 하고, 병원환자방문을 하고 돌아가시면 문상도 하고, 사별가족 모임을 여러 번 했어요. 지금까지 가족 중에 오시는 분이 있어요.
독립호스피스 센터를 만들려고 엄청 애를 썼는데, 8년간 제가 운영하였고 그 후에 다른 수녀님이 이어서 하고 있어요.
독립호스피스 센터가 되려면 나라와 국민들의 도움이 있어야 해요.
전문인력, 재정, 시설 등... 저의 그 꿈은 고이 접었어요.
하느님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루시겠지 그렇게 생각해요.
Q 호스피스에 관한 책과 논문을 많이 쓰셨어요.
동료교수, 제자들과 같이 썼던 책들이 있지요. 번역 책도 있고.. 80년에 미국에서 호스피스를 보고 와서 병원, 임상에서 책이 필요하다고 해서 암환자 책을 86년에 몇 분하고 같이 썼어요.
거기에서 호스피스를 처음으로 소개 했어요.
그 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1994년에 저하고 3명이 ‘호스피스와 죽음’이라는 책을 정말 정성스럽게 썼어요.
호스피스를 하려면 죽음에 대한 많은 인식과 철학을 가져야 하거든요.
외국과 우리와는 죽음에 대한 정신/문화에서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아서 좀 강조했고..
그 후에 많은 책들이 나왔는데 그때 같이 썼던 교수 중에 한분이 제도화도 되었고, 발전도 했으니, 그 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호스피스 책을 다시 쓰자고 해서, 사회학자 인류학자 의과대학교수, 간호학과 교수 등 24명이 모여서 4년 정도 걸려서 작년에 드디어 책이 나왔어요.
책 제목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 의미 있는 삶의 완성」입니다.
Q 내 삶에서 마무리 하고 싶은 것은요?
기억나는 환자 중에 외로운 유방암 환자가 있었어요.
돌아가실 상태였는데 혼자였어요.
말기 상태에서 “혹이 복덩어리다” 라고 하시면서 우리 팀이 떠날 때 많이 아쉬운 표정으로 7충에서 손을 흔드셨는데 그 손이 지금도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이 많을 텐데 골고루 혜택을 받고, 특별히 어렵게 살았던 분들이 마지막에 행복하게 떠나는 제도, 뒷받침, 재정 문제가 좋아지고, 죽을 때 까지 할 수만 있다면 적은 보탬이라도 환자 곁에 있으면서 돌봐드리고 싶고, 조금 가진 거, 들은 것 나누다가 떠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물론 수도생활을 잘 마무리하는 일도 중요 하죠.
욕심일까요?
Q 강의도 많이 하시고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으세요?
죽음 문화의 시작, 그리고 교육을 어린이부터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해요.
죽음이란 무서운 게 아니고 죽음은 삶의 이야기며, 삶의 완성이다. 등
또 행복한 삶은, 잘 살다 잘 떠나는 것인데.. 그것이 행복인데, 제가 오랫동안 해보고 경험해 보니, 준비되고, 돕고, 살아있는 사람은 떠나는 분들을 도와주는 것이 책임이고, 의무라고 강조하고 싶어요.
죽음은 무서운 것도 아니고 호스피스를 통해서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죽음이 친숙해지고, 풍요로워 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조금씩 관심을 가져 보세요.
호스피스는 죽음이야기나 시설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혼자 못 하는 것도 팀으로는 많은걸 이뤄낼 수 있어요.
하시면 매료 될꺼예요. 라고 말합니다.
*** 인터뷰를 마치고
노유자수녀는 전주 엠마오 사랑병원 윤욱희 원장을 유럽 호스피스 학회에 가서 처음 만난 이후 강의도 하고 만나기도 하면서, 호스피스 발전에 관한 의사소통과 마음을 나누게 되고 존경 한다고 하셨다.
대형 병원에도 이런 병동은 거의 없는데 환자를 사랑하는 극진한 마음이 대단하고, 그래서 엠마오사랑병원이 호스피스 완화 의료의 전달체계 모델이 되서 독립 호스피스 센터를 세워 연결 되길 바라셨다.
특히 이곳은 전 예수병원 자리이고, 1898년 미국 여의사 마티 잉골드가 전주 성문 밖에 초가 한 채를 사들여 진료하면서 시작 된 국내에서 근대식 병원으로는 세브란스의 전신인 광혜원(1885년)에 이어 두 번 째로 설립된 한국 의료선교 발생지이기도 해서 더 큰 의미가 있는 병원이기도 하다.
마지막 하늘 길 친구를 그리워하며 눈물 짖는 수녀님, 1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963년 샬트로 성바오로 수녀회에 입회해서 56년째 수도자의 삶을 사시는 이 분을 통해 하느님은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고,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기쁨도 만나게 됐다.
전주에서
호스피스에 관심 있다면 일단 전주 엠마오사랑병원 문을 두드리면 된다.
? 사진 동영상 : 多陽
? 글 : 김세영 방송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