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본인 소개 좀 해주세요.
부채를 만드는 방화선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채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옛날 토림 선생님이 저에게
“방 선생 사람은 환경의 동물인 것 같애! 아버지 닮아서 부채도 잘 만들어”
말씀 하신 게 생각나고, 그래서 더 잘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가 쓰시던 부채 재료들을 재조명을 해서 실사 도 하고 꾸준히 만들고 있어요.
Q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 부채를 만드시게 됐나요?
17살 때, 전라감영 선자청에 가서 아! 부채를 만들면 돈을 많이 벌겠구나 싶어서 시작 하셨데요.
아버지는 합죽선을 안 만드셨어요.
부채 전성기 때는 밀가루 광목 푸대에 돈을 꾹꾹 눌러서 담아서 농 뒤에 속에 던질 정도로 부채가 잘 팔렸어요.
그때는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다 우리 집으로 와서 부채 만들고 그네 엄마 아버지도 다 우리 집에서 일을 했어요.
Q 아버지 방춘근 명인을 기억 한다면요?
가위질이 생각나요.
가위질을 양손으로 하셨어요.
원래 아버지가 왼손잡이셨거든요.
근데 부채 본도 없이 모양을 다 오리셨어요.
그건 저는 못 따라가겠어요.
이 수많은 부채를 내가 가위로 다 오려서 도련을 하고 있지만 그건 못하겠어요.
어느 날 비가 오는데 양철 지붕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살 놓고 튕기는 소리 ‘ 또드락 또딱’ 여러 명이 하니까 비 떨어지는 소리로 들리는 거예요.
거기에서 매력을 느껴서 제가 살 놓은걸 좋아하게 됐어요.
살 튕기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때부터 내가 좀 빠졌고 아버지한테 부채 만든다고 많이 혼났지만 특별히 아버지가 가르쳐 주지는 않았어요.
Q 본격적으로 부채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요?
20대 때에 눈만 감으면 형용할 수 없는 색이 번개처럼 왔다 갔다 해요.
그러면 색을 막 적어요.
빨강 파랑 노랑색 태극무늬의 색을 잊을 수가 없어요.
눈만 감으면 색이 돌아다니는 거예요.
또 눈만 감으면 하얀 모시 한복을 입고 토산품 가게 사장이 되 가지고 앉아 있는 꿈도 꾸고..
그 당시 ‘눈뜨면 없어라’ 의 김한길 선생의 책을 읽고 힘을 많이 얻었어요.
그러나 한번도 내가 힘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요.
나는 오로지 부채만이 살 길이다,
우리 아버지 기대치에 못 미쳤으니까 오기가 생겼어요.
아버지는 92년도에 명장이 되셨고 93년도에 문화재가 되셨는데.
돌아가시기 3일전에 “남의 말 듣지도 말고 남의 것 보지도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부채를 열심히 만들다 보면 끝이 있을 것이다”는 말씀을 남기셨어요.
Q 부채 만들 때 가장 행복하시다구요?
한이 많이 쌓였죠.
그 동안 말 못할 사연들 사람들에 대한 아픔들, 그러나 비 안 새는데서 부채만 만들면 그게 행복이었어요.
어려서 풍족하게 살아서 돈에 대한 아쉬움은 없고, 지금도 없어요.
우리 아버지는 곡두선도 하고 모든 단선 부채는 다 하셨지만 태극선이 최고 많이 인기였어요.
부채 가짓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모든 디자인은 자연 속에 있어요.
부채를 만들어 이름을 주는데..
하늬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인 하늬 선... 태극소리선 등등...
Q 미술가를 위한 부채도 만드셨다구요?
제가 모든 작가들을 위해서 화폭 부채를 만들었어요.
전에는 액자에 유리를 끼우는데, 작품도 생명인데 숨통을 막아요.
저도 유리를 썼지만 어느 날 부터 유리를 뺐어요.
그림 그리는 작가들이 작은 부채에다가 그림을 그려서 전시를 하는데, 오랜 세월 공부를 하고 그림을 배우고 해서 탄생된 작품을 위해 대형 부채를 만들어서 저렴하게 내면 어떨까 싶어서 탄생 한 것이 화폭부채이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폭부채..
반응이 너무 좋죠.
액자 대용의 부채...
내 부채가 작가의 그림을 더 잘 표현하고, 작가의 그림으로 인해 내 부채가 빛나면 얼마나 좋아요..
Q 이제 본격적으로 방화선명인의 부채를 만들 때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런 저런 부채, 창작 부채, 다 해봤지만 아무래도 원초적인 게 최고예요.
어릴 때 봤던 부채, 특히 우리 아버지가 만들던 부채 옛날부터 내려오는 복원부채 이런 작업을 중점적으로 할려고 해요.
전주시 장인학교 수업이 있어요.
앞으로 전라북도에서 공에 장인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시범적으로 하는 학교 수업인데 목요일날 초급반 심화반 해요.
1기생이 졸업을 했고, 학번까지 다 있어요.
그게 큰 보람이고 열심히 가르쳐서 사라져가는 문화 맥도 좀 잇고 보람된 일을 좀 하고 싶어요.
우리 제자 이수자가 5명인데, 한지도 전시 할 때는 염색해서 쓰기도 하고 , 마음속 안 좋은 사람들이 내 부채 앞에서 무릎 한 번 꿇어 봐라 하고 한 것이 이 자리에 온 거죠.
오기로 했지만 부채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었으면 얼마까지 갔겠어요?
Q 문화관광 도시 천년 전주에 대한 기대는요?
언제나 시작은 그럴 듯한데 끝이 없어요.
그래서 스스로 열심히 하는 수 밖 에는 없다는 생각을 하죠.
우리가 더 좋은걸 잘 만들어 선보이면 대중들이 우리 스승일거다 라는 생각을 해요.
실력 있는 사람이 의식주 해결을 위해 떠나는 경우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없는 날이 좀 왔음 좋겠어요.
전통 문화가 제대로 뿌리를 내려서 나라가 강국이 더 되고 문화를 더 발전시키려면 문화재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능에다 주어 진 거라고 생각해요.
Q 전통 공예, 특히 부채에 대한 미래 가능성은 있는 것 갔나요?
당연하죠. 저는 사람들에게 전통적 인걸 하라고 권해요.
유럽의 자수 등등 이런 건 유행이다, 그러나 전통에 관한 기능을 배우면 사라지지 않거든요.
아무리 유행 따라 갔다 해도 다시 돌아오니까...
우리가 태어나서 죽으면 땅속으로 가듯이 똑 같은 걸거다.
그러다 보면 돌고 돌고 어느 날 당신은 장인이 되어 있을거다 라는 거죠.
멀리보고,,,, 희망을 가지고,,,, 그리고 그림을 좀 배웠으면 좋겠어요.
색감을 익히고 감각을 익히려면
앞으로도 내게 있는 기능을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고.. 갖게 하고 싶은 게 제 마음 이죠.
모든 색의 이름다움이 그냥 나온 건 아니니까..
모르는 것 보다는 아는 게 나으니까...
*** 인터뷰를 마치고
방화선 선자장의 아버지 방춘근 전라북도 제 1호 무형문화재는 방구 부채 중 태극선의 명인이다.
방화선 명인에게 부채는 삶 자체이다.
거의 모든 종류의 단선부채를 되 짚어보고 실험하고 현대적 글씨나 그림도 넣어보고 화가들을 위해 화폭을 대신하는 대형 부채도 만들어 보는 명인의 장인정신은 앞으로도 그 마음 한 가운데 아버지의 유언 “남의 말 듣지도 말고 남의 것 보지도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부채를 열심히 만들다 보면 끝이 있을 것이다” 한 눈 팔지 말고 끊임없이 올 곧게 이 길을 가라는 아버지의 유언이 방화선 명인이 오늘도 최고의 부채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는 ‘THE WAY’ 정신이고 또한 우리 모두 가슴에 생겨야 할 장인 정신일거다.
전통부채의 멋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새로운 바람의 명인
A master of a new wind that harmonizes the taste of traditional fans with modern sensibility
融合??粉?品味??代感性的新?大?
사진 동영상__유기승
글__정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