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기록이 전주 기록, 살아있는 역사책을 쓰기 장명수 전북대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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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기록이 전주 기록
- The record of my life is the record of Jeonju City
- 我生命的??就是全州市的??
살아있는 역사책을 쓰기
- writing a living history book
- ?一本活的?史?
도시계획에 전통문화 입히기
- Reflecting traditional culture in urban planning
- 在城市??中????文化

장명수
전북대 명예총장

#1.

2022년 11월 19일 전북대학교 진수당 가인홀에서 장명수 도시아카데미 북콘서트가 열렸다.
한 사람으로 삶으로 보는 역사와 음식에 관한 책 2권이 동시 출간 돼서 살아있는 역사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격동기 반백년(1945-2022)
남겨야 할 구술기록

“이 책은 개인 중심의 사생활적 회고가 아니라 시대 변천 회고 속에서 사생활이나 사회생활이 접목되어 있어서 시대 변천사가 주체이고 개인생활은 부록과 같다”

전주음식먹거리 식담록(食痰錄)

“음식에 관한 이야기책을 뛰어 넘은 전주의 생활사와 전주 음식문화를 담겨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책이 될 것이다”

#2.

옛 기억을 더듬어서 기록으로 만드는 일이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내 기록이 전주의 기록이라는 자부심으로 잘 때도 메모지를 두고 자고,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도 떠오르는 기억을 기록해서 2권의 역사 기록 책을 썼다고 말했다.

중요하고, 신기하고, 가치 있는 부분의 강한 기억은 평범해 보이지만 치유의 힘이 있을 것이고, 지금 사람들에게 당시 시대 배경 상을 보여주는 시대 변천사를 남겼다는 자부심도 있다고 말한다.

대담 형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퍼즐을 맞추듯 기록했고. 책이 나올 때까지 험난한 길을 어떻게 살아 왔는가 묻고 또 물어 기록을 재촉한 송영애 박사에게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Q 책을 2권 내셨는데 어떠세요?

책은 지식인에게는 자식 같은 것 이어서 둘을 만들어 놓으니까 아주 든든할 뿐만 아니라 할 일은 좀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13번째 책인데 협업한 송영애 박사가 음식 전공자인데 우연히 대화를 하다가
그 때 무렵에 뭘 먹었습니까? 물어봐서 이것저것 먹었습니다. 했더니
아 그것 좀 기록합시다.
그래서 음식 책 기록이 시작된 거예요.

한참을 하다 보니까 문제가 생겼어요.
8.15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다 보니까 그 자체만 해도 방대한 양이고,
음식만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되게 생겨서 일단 음식을 되는대로 마친 다음에 별도로 8.15와 6,25에 대한 구술작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은 6,25전쟁과 8,15해방에 관한 구술 실록은 그 전에 전주문화원에 있을 때 했던 타인의 기록이지만 이미 두권을 냈거든요.

주로 해방이나 전쟁만 가지고서는 이미 많은 실록이 있지만 그것은 그분들의 실록예요.
나의 실록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 내가 전주에서 경험했고, 참여했고, 뭔가 창작 했던 것을 엮어서 낸 것이 이번 ‘전주격동기 반백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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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에 내신 2권 책의 가치를 좀 생각해 본다면요?

지난번에 펴낸 방대한 2권의 실록들은 그분들의 정직한 자기들의 기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약간 과장 됐거나 기억을 잘 못 해서 오류가 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막상 나만의 기록을 하려고 하니까 완전히 나의 개인적인 책임이 되기 때문에 고르고 수정하고 계속 쥐어 짜는 듯한 실록 기록을 했기 때문에 보다 더 힘들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살아 있는 역사책’ 이라는 평을 받으셨는데 평생 자료를 모으셨습니까?

대개 5-6세 까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대충 6살 반에서 7살 때부터 대충 기억이 나요.
종전에는 그 기억이 또렷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필요가 없으니까 잊어버리는 거죠.

이걸 다시 불러내서 쓸려고 보니까 아주 난감한 거예요.
자다가도 일어나서 기억을 하고 기록하고 정말로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기억을 되살리지 않으면 기억과 역사는 사라집니다.

지나 온 시대상을 투영한 자서전, 소시민이 본 전북 근현대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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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의 생활사外 내가 본 도시변천사나 기여한 전주문화는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의 개발 연대가 60년대 중반부터 시작을 했거든요.
50년대부터 60년대 초까지는 사실은 좋은 의미로 보면 정지된 도시이고, 나쁜 의미로 보면 아주 활성화 되지 않은 구태의연한 도시였습니다.
나름대로 그 당시 시장이나 도시를 다루는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내고 뽐내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 잊어 버렸습니다.
물론 지방지에 약간 씩 기록이 돼 있다고 해도 내용들은 다 잊어 버렸거든요.
그걸 내가 개인적으로 불러냈죠.

불러내서 50년대 있었던, 봤던, 경험했던 것과 더불어서 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직접 내가 참여한 기록입니다.

개발 연도 초기이기 때문에 전공자도 없고, 가이드 라인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 때 내 나름대로 나의 전공을 살려서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을 하고 교육을 시키고 하다 보니 남의 세계보다는 내 생애가 훨씬 더 복잡하기도 하고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내가 본 도시변천사에서 특히 기억나는 부분은요?

변천사 중에서는 도시발전을 위한 건축물도 있었지만 사적인 이익에 관한 것도 꽤 있었습니다.
완산동에서 전주시장으로 가는 매곡교가 있습니다.
이 매곡교는 그 때만 해도 자동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잡상인들이 양쪽에 들어 차가지고 일종의 시장 거리가 됐어요.

그걸 본 장사꾼들이 이런 다리를 넓게 옆에 또 하나 만들면 시민도 편리하고 자기들도 돈 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일종의 광로 넓은 교량 복개를 시작하자는 겁니다.

명분은 그럴 듯 하거든요. 다리 두어 개를 편하게 놔서 거기다 상가를 만들면 이색적이고 좋지 않을까?

명분을 내 세우면서 슬금슬금 여론에 힘입어서 복개를 하려고 시작 한 거예요.
그러나 도시계획위원과 나의 생각은 절대 불가하거든요.

한번 교량이 섰다고 하면 몇 십년 갈지를 모릅니다.
이해관계가 있고 강력한 반대를 하고 설득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Q 도시계획 전문가로서 전주라는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전주는 전통 문화도시라고 하고 있고 맞습니다. 또 전주에서 발생된 고전적 현대적 문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50년 60년대만 하더라도 전통 문화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주가 과연 전통문화 도시인지 아닌지도 잘 모를 때입니다.

왜냐면 소득은 작고 취업처는 없고 전부 서울로 올라가고 텅 빈 도시가 되가지고 도시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려울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 저 나름 데로 찾은 것이 전주교동의 한옥마을을 보존하기로 시작 했다던가, 그 외 전주가 영화도시였기 때문에 전주 영화제를 만든다거나, 이런 것에 착안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상당히 정력적으로 추진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사실 전주의 발전기는 80년대 전후부터 시작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전에는 여명기였습니다.
도시적 물리적인 방향은 김완주시장이 닦아 논겁니다.

전주시의 도시 골격과 큰 그림은 적어도 80년대 이후에 전주가 이만한 전통 문화도시로 발전이 된 걸로 보고 있습니다.

도시계획이라는 단어 자체를 알지 못하는 시기에 60년대 초반에 많은 개혁을 시작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도시발전과 지역의 국토계획이었습니다.

그런 공문이 계속 내려오는데 공무원들이 전혀 알지를 못 했습니다.

전문용어이고 해 본 일도 없고 그 때 나는 서울에서부터 전공을 했고 체험과 경험을 했기 때문에 많은 참여를 하게 된 것이죠.


Q 특히 남기고 알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도시 문제는 이해가 끼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 용도지역 이라는게 있는데 녹지지역이 주거지역으로 상업적으로 변하면 땅값이 폭등하거든요.

도시계획에는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도시 미래를 위해서 왜곡된 일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저지를 하면서 올바른 도시 방향을 끌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고덕산 타워 이야기예요. 전주가 아시아의 심장이 되려면 세계 제일이던지, 아시아 제일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시아 최고의 대학이 있던지 아시아 최고의 공원이 있던지 박물관, 미술관....

그러나 전주에 아시아 중심적인건 하나도 없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세계 1위를 할 수 있는 건 타워를 짖는다고 하는데 그 타워를 고덕산 위에 지어 놓으면 세계 제일의 기록이 나오고....한 번쯤 해 볼만한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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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도 하실 일이 많으시겠네요?

전주에 관한 문화적이거나 도시적인 얘기를 할 때 엉뚱한 허구가 많이 돌고 있어요.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아직도 기록에 남아있지 않고 남들도 모르고 앞으로 남겨야 할 것들을 같이 방송하고 다큐멘타리 만들고 유투브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주의 전통문화를 자랑할 만한 것들을 올바르게 기록하고 후세에 남겨야 한다고 봐요.

우리에게는 엉뚱한 소리와 전혀 비역사적인 얘기를 과장해서 얘기 하는 습성들이 있거든요.

교동 한옥 마을만 하더라도 조선시대 때부터 흘러 나왔다고 해서 쓴 것들이 20개 정도나 돼요.
도시 이야기, 교동 한옥마을, 전통문화에 관한 얘기 등등.

그런 것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 전주의 도시 역사를 통념적으로 통사를 하나 만들고 싶어요.

중 고등학교때 배운 한국사가 통사거든요. 전주 도시史인 전주 통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구술실록을 3번째 만들었다고 하셨는데요?

하나는 8.15해방, 두번째는 6,25 그리고 세번째는 나를 중심으로 한 나의 생애사에다가 현재 근대사를 접목을 했어요.
그래서 개인생애사와 개인역사 같지만 그 배경은 전주 사회사, 변천사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그 변천사 중에서도 시중에 나와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걸 지적해서 전주 통사를 만들었음 아주 좋겠어요.
이건 후손에게도 필요한 꼭 필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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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치고

장명수 명예총장에게 나이는 그냥 숫자이고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야 할 의미 있는 길일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아름다운 생각과 의미가 있어서 본인만의 살아있는 역사책을 한권 씩 남기기를 권했다

서울대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했고. 일본 와세다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도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대에서 32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건축 및 도시계획을 가르쳤다.
전북대와 우석대 총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북대에서 대학원생을 가르치고 있으며, 사회문화단체에서 도시문화 형성에 대한 특강도 하고 있다.

2023년 늙지 않는 사람

'계속해서 공부하는 사람’
- A person who continues to study
-不???的人

‘계속해서 독서하는 사람’
- a person who continues to read
-一?????的人

‘계속해서 사회에 관심을 두는 사람’
- A person who continues to be interested in society
-一??社?持?感?趣的人

“정년퇴직 이후는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어야 하는 시기”
- The time after retirement is the time to give back to society what you have received from society.
-退休后的??是???社?中得到的?西回?社?的?候。

장명수 전북대 명예총장


사진 동영상__유기승
글__정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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