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전통창조로 우리 음악을 우리다움답게.. 유장영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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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요제 스타 大?歌??的明星
새로운 전통창조로以新的??
우리음악을 우리다움답게 ?我?的音?成?我?的?傲和?同
유장영 작곡가
전) 전라북도립 국악원 관현악 단장
전)전남도립국악단 예술감독
전남도 무형문화재 전문위원
#1.
신임 유 예술 감독은 전남 완도 출신으로 1988년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원으로 입단해 학예연구실장(1991∼1999 / 2002∼2003년), 관현악단장(2003∼2014), 예술고문(2015) 등을 역임했다.
주요 활동으로는 '창극 시트콤-옥이네', '전북브랜드 뮤지컬-춘향', '향토 뮤지컬-신 콩쥐팥쥐뎐', 방가디뎐, 뮤지컬 레미제라블, 창무극 호남벌의 북소리
마당창극 비기비명창 권삼득, 창극 만복사저포기
아시아 오케스트라 전라도 아리랑 (전주세계소리축제, 2003)
관현악극 “호랭이 물어갈 놈”, 시대창극 흐엉의 희망일기 (전남도립국악단, 2016)
창극 목민심서 (전남도립국악단, 2018)등 다수의 작품을 작곡과 지휘감독 했으며, 전통예술 분야의 현대화와 국악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2.
유장영 작곡가는 지난 6월에 정말 오랜만에 음악으로 전주를 방문했다.
‘화(和) 라는 위대한 에너지와 카리스마’, 개원 36년을 맞는 전북도립국악원의 뜻 깊은 교수음악회를 기념해 만든 곡이다.
1981년에 MBC '대학가요제'를 시작으로 KBS '젊은이가요제'에서 최우수가창상, 이듬해에는 '소망'이란 곡으로 다시 '대학가요제'에 나가 전국대회에서 수상. 국악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다분히 국악적인 곡들이었다.
"우리 음악을 배우게 된 건 사실 신문 사설이 계기가 됐습니다. 영작문은 잘해도 국어작문법은 잘 모른다는 내용이었는데, 꼭 내가 그런 꼴이었죠. 서양음악을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음악을 바탕으로 하면 뭔가 좋은 것이 나올 것만 같았어요.“
그 때 나이가 스물아홉. 막상 공부를 시작하고 나니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작곡가 박범훈 선생님의 권유와 지도로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국악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다.
Q 본인 소개 좀 해주세요.
전라북도 전통예술분야에서 30여년 활동을 했고 최근에는 전남도립 예술감독으로 4년 근무를 하고 이제는 자유스러운 몸이 됐습니다.
올해가 전라북도 도립국악원 개원 36년이 되는 해 인데, 36년 동안 정들었던 건물이 헐리고 새로운 건물이 2년여에 걸쳐서 세워지게 되는데 뜻 깊은 마지막 현재 건물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수음악회를 하면서, 그동안 36년 동안 도립국악원의 역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을 곡으로 써 줄 수 있겠냐는 의뢰가 와서 이번에 전주에 다시 방문하게 됐습니다.
Q 이번 곡에 어떤 마음을 담고 싶었고, 같은 전라도지만 북도와 남도 음악 색깔이 좀 다를 수도 있는 것 같은데요?
1988년 10월 도립 국악원 창단 단원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연구실장, 관현악 단장을 거쳤고, 제 청춘과 꿈이 다 녹아 있는 이곳에서 정말로 많은 생각들을 했고, 이 곡을 쓰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생각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곡이 굉장히 늘어나서 약 18분 정도...그만큼 제가 담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전라북도하고 전라남도는 같은 호남이라고는 하지만 기질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전라남도는 전통을 좀 더 고수하는 것 같고 전라북도는 새로운 모색 등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전라남도는 주로 선배들이 했던 것을 많이 하고, 제가 가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고 전라북도는 전통도 잘 하지만, 요즘은 굉장히 활발히 새롭게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공연들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2003년 전라복도 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장으로 취임했을 때 우리음악, 특히 창작국악에 대한 분위기는 어땠어요?
사실 제가 관현악단으로 갔을 때만 해도 조금 침체였다고 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전라북도가 과거 민속예술의 중심이라고 힐 수 있었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기운은 있었지만, 결과로, 과실로 맺지는 못한 상태였다고 해야 합니다.
단원들도 자신감이 넘치지 않았고, 같이 호흡을 맞추고, 다시 전북이 새로운 국악의 중심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악의 창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 그래서 50년, 100년 후에 이 사대의 음악 중심이, 서울이 아니라 다시 또 전라북도이다라는 애기를 듣고 싶다는 걸, 단원들과 공감을 했고, 그러면서 전라북도 정체성에 맞는 새로운 곡을 많이 개발하고, 공연을 많이 올렸습니다.
나중에는 단원들이 서울등 여러 단체들하고 같이 연합해서 공연을 해도 자부심, 자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넘칠 수 있게 변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음악인생 올해로 몇 년째 입니까?
저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었어요.
아버님이 시조하시는 것 보고 너무 좋다는 걸 느꼈거든요.
고등학교 때 처음에 작곡이라는 것을 하게 됐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악보를 만들거나 생각나는 음들을 적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그게 특별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습작을 해서, 81년에 KBS '젊은이가요제'에서 가창상을 받았으니까요.
클래식을 하다가 대중음악을 하면 친구들이 좋아하고, 즉각적인 반응 등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우리 음악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내가 한국 사람인데 왜 서양 클래식이나 대중음악만 하고 있나? 생각이 문득 들어서 우리 음악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 새로운 정체성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해서 시작을 했는데, 너무 좋고, 딱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국악원에 입단하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 거죠.
Q 그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죠.
처음에는 창극단으로 들어갔는데 뜻하지 않게 연구실 연구원으로 발령이 나고 연구실장을 하다 대학원을 가게 됐는데, 연구실에서 책을 내고 연구를 하고 있으니까 그 당시 박범훈 선생님께서 적극적으로 작곡을 권하셔가 대학원은 작곡을 전공하게 됐어요.
관현악 단장을 하게 됐고, 운이 좋았고. 좋아서 좀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었고... 고비고비 마다 인사권자의 용단도 있었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아주 다양한 호기심이 작용을 했고, 새롭고 창의적인 것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Q 지금까지 몇 곡이나 쓰셨어요?
저한테는 의미가 없어서 한번 도 세어 본 적은 없어요.
그때그때 필요한 곡이 있으면 소화하고 쓰는 것이 중요하지 그걸 내가 모아서 위대한 작곡가가 될거다라는 생각은해 본적이 없어서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정리해보면 '창극 시트콤-옥이네', '전북브랜드 뮤지컬-춘향', '향토 뮤지컬-신 콩쥐팥쥐뎐' , 방가디뎐, 뮤지컬 레미제라블, 무극 호남벌의 북소리.
마당창극 비기비명창 권삼득, 창극 만복사저포기
아시아 오케스트라 전라도 아리랑 (전주세계소리축제, 2003)
관현악극 호랭이 물어갈놈. 시대창극 흐엉의 희망일기 (전남도립국악단, 2016)
창극 목민심서 (전남도립국악단, 2018)등이 생각나네요.
Q 2015년 전라남도 예술 감독으로 일하면서 얻은 음악적 자산이라면요?
전라남도는 전체를 관장하는 직책에 있었기 때문에 무대 종합예술이라는 창극 등을 마음껏 해 봤던 것 같아요.
시대창극이라는 것을 처음 시도해 봤는데 요즘 사람들의 정서, 요즘 사람들의 애기 들을 담아낸 것 등 음악적으로 훨씬 확장할 수 있었어요.
예전에 판소리가 그 시대의 용광로라고 해서 당대의 음악을 다 담아내는 그릇 이었다면 시대창극이라고 이름을 딱 정해 놓고 보니까 지금 현대의 음악을 다 담아낼 수 있는 용광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것도 너무 재미있고, 다양한 시도들을 했던 것이 전남에 가서 저한테는 큰 소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Q 앞으로 더 자유롭게 펼쳐질 음악 인생을 어떻게 꾸리고 싶습니까?
음악도시를 장기간에 걸쳐 여행하고 싶고, 약 10년 정도 자료가 모아지면 결과물을 책이던지 곡이던지 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본격적인 음악도시 여행을 할려고 해요.
34년 전통 예술분야에 있으면서 곡을 쓰는 것이 조금은 의무감이 있었거든요.
해야하고, 반듯이 작품을 위해서 곡을 써야 하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좋습니다.
시간에 억매이지 않고 곡을 쓸 수 있다는 게 너무 큰 좋은 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유로 곡을 쓰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게 가능하고 앞으로는 이렇게 위촉 받아서 쓰는 곡보다는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곡 내 스스로가 쓰고 싶은 곡 쓰고 싶어요.
억매이지 않고 여행을 다니면서 돌아와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곡을 써서 그게 발표가 되지 않더라도 세상에 남기는 게 마지막 내 꿈입니다.
Q 이 시대 우리 음악을 하는 사람들 특히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오랫동안 갖고 있던 생각인데 저는 우리다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국악이 그것을 벗어나면 아무리 인기가 있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오랜 생각입니다.
저는 음악주권이라는 표현도 해 봤는데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다움, 전라북도다움이 있어야 해요.
우리 음악 속 오랜 뿌리에서 부터 그걸 축출을 해 낼 수 있어야 하거든요.
장단이랄지 음계라지 선법이랄지 악기의 음향적인 조합이랄지..
이런 것들이 우리 전통의 뿌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변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사실 지금은 굉장한 변화들이 있잖아요.
대중들은 일순간에 좀 흥미 있고 놀라워합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오래 갈까요. 그런 시도들이 정말 일시적인 유행이거든요.
일시적인 유행보다는 우리가 오랫동안 몸속에 유지해왔던 DNA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시도에서 정말로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다움을 잃지 않는 것..
이번에도 곡을 쓰면서 그것을 계속 유지할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장단이랄지 음계랄지..
특별히 후배들에게는 새로운 것은 늘 창조가 되어야 하지만 유행을 따라가는 변화가 아니라 내가 유행을 선도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다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음 좋겠고, 우리 장단이랄지 선법 등을 공부를 많이 하면 그 안에서 새로운 내 것을 창조됐을 때 그게 더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 인터뷰를 마치고
오래전에 만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작곡가마다 가는 길이 있습니다.
편하게 갈 것인가,
어렵더라도 새로운 길을 갈 것인가,
그 때가 고민스럽죠.
“Each composer has his own path. It is troublesome whenever I have to decide whether to go easy or to go on a new path even if it is difficult.
“每?作曲家都有自己的道路。?我必??定是走?松?是走新的道路?,?使困?重重,也?麻?。
작곡이 내 안의 정체성, 내 안의 음악적 정서를 확인하는 것이라면
저는 만족하는 편입니다."
If composing is about confirming my inner identity and my inner musical emotion, I am more than satisfied.”
如果作曲是?了??我的?在身?和我?在的音?情感,那我就?足了。“
-작곡가 유장영-
그가 했던 이 말이,
이렇게 세계의 공통언어인 음악으로 한국을 알리고, 연주되고..
이런 다양한 언어의 인터뷰 기사들이 세계 언론에 실려지길 바란다.
사진 동영상__유기승
글__정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