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가야금의 첫 울림이 좋아..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황은숙 교수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4-29 17:40 | 386 | 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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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리, 자연의 소리
- Our sounds, the sounds of nature
- 我们的声音,大自然的声音

가야금의 첫 울림이 좋아
- I like the first sound of thegayageum(traditional Korean harp)
- 我喜欢伽倻琴(韩国传统竖琴)的第一声

연주가로, 교육자로 자리매김
- Living as a musical instrument player and traditional music educator
- 作为一名乐器演奏家和传统音乐教育家

황은숙 교수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1.

“ 가야금 악기가 소리 이미지도 없었는데, 그냥 막연하게 명주실의 울림이 제 마음에 와 닿았고, 그 소리가 가슴에 탁 박혀서 음악으로 내 자신을 표현한다라는 작업이 되게 멋있었어요.
엄마한테 혼나서 마음이 아플 때도 악기를 타면 엄마도 그 소리를 듣고 풀어 지셨거든요.
그러면 소통이 됐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면서 이 악기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강한 생각이 어렸을 때부터 들었죠”

#2.

황은숙교수는 내년 정년퇴직으로 국악원의 교수의 임기를 마치게 된다.
그러나 이제부터 가야금만을 위한 연주자로 교육자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한다.

“가야금은 제 인생이고 가장 사랑하는 동반 악기인데 계속 연구해야 하죠.
16살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번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어요.
더욱 더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저변확대도 하고, 그리고 이 지역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게 저의 앞으로 생각입니다”




Q 가야금 공부는 어떻게 시작이 됐나요?

가야금 전공인 문영란 선생님이 음악 선생님으로 오셔서 전공을 하라면서 앞으로 우리 음악은 이렇게 갈거다 라는 미래에 대한 말씀과 함께 저에게 인간문화재에 꿈을 갖게 하셨죠.

그리고 우석대학교 국악과가 84년도에 처음 생기면서 제가 1기로 입학을 했고 지금도 우리 동기들은 여러 지역에서 활동도 많이 해요.
교수도 됐고, 연주단체에도 있고...

성애순 선생님께 최옥삼류 산조를 공부하면서 음악 속에서 귀신의 울음소리를 처음으로 느꼈어요.
가야금으로 귀신의 울음을 표현했는데 그게 너무 매료 돼서 아 정말 내가 가야금 공부하기를 잘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 4학년때 김철진 선생님이 전임으로 오시면서 제대로 된 공부가 시작 됐는데 그 선생님께 김죽파류를 2-3년 공부를 하다 다시 김철진 교수님께 강태홍류를 공부하기 시작 했는데 그 매력이 기가 막혀요.

산조 자체가 남성적인 음악이기 때문에, 제가 조금 힘있게 연주 한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그 음악을 표현하는데 너무 좋았어요.

슬프지만 그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안에다 감추고 표현 하는 것 등등..
선생님께서 그걸 세세하게 감정을 실어서 지도를 해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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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학교 졸업 이후 활동은 어떻게 하셨나요?

제가 김철진 선생님께 계속 공부를 하면서 도립 관립단체 시험을 봐서 90년도에 들어갔어요.
관현악단에서 활동을 하다 단원부터 시작해서 수석까지 올라 갔는데, 국악저변확대를 위해서 교수하기를 권유하셔서 국악원으로 왔어요.

저는 학생들에게 100을 주고 싶었는데 수강생들은 10도 못 받으니까 다시 관현악단으로 가서 연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나 스스로 도태 되지 않으려고 개인 독주회를 시작했죠.
독주회를 1년에 한번씩 10회 정도 했어요.
황은숙 가야금독주회 하면 1년에 한번 씩 하는 걸로 일반인들이 생각할 정도로 저 나름대로 열심히 했죠.


Q 교수로서의 활동도 열심히 하셨죠?

교수로써 제 자신의 체계화가 필요했어요.
저를 내려놓고 내가 즐겨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대중음악의 저변확대를 위해서 국악원에 왔으니까 이들에게 100을 주기 보다는 10씩을 제대로 주면서 즐길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동호인을 결성을 해서 봉사를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게 된거예요.
‘가야의 香’이라는 동호인들의 모임을 만들어서 소외지역이나 어르신들 계신 곳을 찾아서 봉사도 하고, 저와 동호인들 모두 보람이 컸죠.
그리고 그 당시 동호인 대회가 많이 생겼어요.
그 당시 수강생들의 실력 연마와 자신감도 불어주는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Q 2002년 전주가야금 연주단이 창단됐죠?

대학에 강의는 나갔지만 전임이 아니다 보니 저희 제자들을 책임 질 수 있는 한계가 있었고 “제가 갈 곳이 없어요” 한 친구가 와서 저한테 울면서 하소연을 하는 소리에 그 때까지는 별 책임감도 없었는데 이제는 내가 이 지역에서 가야금의 선배이구나라는 생각과 이 친구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무대를 만들었어요.

저희가 설 수 있고, 살아 있는 건 무대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2002년에 졸업 했던 친구들 대학 다니는 친구들을 끌어다가 모아서 자그마하게 창단 연주를 했었죠.

그 때 한참 25현이라는 악기가 많이 도입이 돼서 이 악기로 여러 장르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계기도 됐고, 그러다가 저희가 溫故而知新 Ⅰ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저희가 한지 한옥 한복 한스타일로 주제를 삼아 작곡자들에게 의뢰를 해서 연주하고 음반도 냈는데 요즘도 대한민국의 여러 단체에서 저희 곡들을 많이 써요 저희가 의뢰를 한 곡들이 많아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게 저희 10회 정기연주회 때 가야오케스트라를 제가 만들었어요.
가야오케스트라가 그때는 4중주, 3중주 그때 많이 서 봤자 8명, 12명인데 저희가 40명이 넘는 연주자가 한 무대에서 연주했고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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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두 딸이 모두 가야금을 전공했다구요?

저희 애들이 엄마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큰 애는 제가 정말 악기를 애기 때부터 시키고 싶었는데 본인이 안 하겠다고 딱 거절을 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공부를 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까지 졸업을 했구요.
막내도 하겠다는데 제가 말렸죠.
그런데 고집이 좀 세요.
엄마 자기 한번 믿어봐 달라고 또 조르는 바람에 제가 져서 막내도 역시 가야금 전공 한예종 졸업을 하고 지금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Q 가야금의 종류가 다양하지요?

법금이라는 정악가야금이 있는데 가장 오래된 악기라고 생각하심 되고 이 악기는 궁중음악이나 양반 계층에서 음악을 주로 사용하는데 소리는 저음으로 이뤄져 있어요.

관현악을 같이 할 수 있는 맡바탕 저음의 음으로 이뤄지 악기이고 또 다른 가야금은 산조 가야금인데, 정악가야금보다는 역사가 얼마 안 됐죠.

이 악기는 지금 100여년 밖에 안 됐어요.
조선말에 판소리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졌고 서민들이 즐기는 악기라고 볼 수 있는데, 사람의 톤과 사람의 음높이에 맞게 폭도 작게 키도 짧게 하고 줄 굵기도 다르고, 사람의 목소리 음과 높이 톤하고 약간 비슷하다고 볼 수가 있어요.

그리고 가장 최근에 개량된 가야금은 25현인데 이 악기는 개량을 해서 7음을 써요.
25줄에 실을 얹어서, 관현악단과 대중화된 음악회에서 쉽게 다가가는 음을 표현하는 악기이죠.


Q 최옥삼 가야금산조를 배우게 된 계기는?

김철진 교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배움에 많은 방황을 했어요.
강테홍류를 계속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강테홍류를 하시는 선생님은 부산에 계시고, 그 당시 제가 석사 대학원 졸업을 해야 하는데 독주회를 앞두고 김철진 선생님은 돌아가시고 누구에게 지도 받을 때가 없어서 성애순선생께 갔습니다.

저 좀 봐주시라고 그래서 성애순 선생님과, 인연이 된 계기로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고 부탁을 드렸지만 처음에는 몇 번 거절을 하시다가 제가 하도 부탁을 드리니까 그때부터 저를 지도를 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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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생 선생님께 공부를 해야 하나요?

우리 음악은 악보가 있어서 그냥 보면 되지 않나? 생각 하지만 우리가 내면적으로 자기 색깔을 끌어내는 건 누구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힘들어요.
그 음악을 끌어 내 주는 게 스승님이 하시는 역할인데 그걸 저 혼자만은 할 수가 없어요.
저도 지금 이 나이가 됐지만 연주회가 있으면 선생님께 기술적인 것보다 내 음악의 틀이 혹시 틀어진 것들, 그러면서 제 색깔에 맞춰서 안내해 주는 것과, 선생님 소리를 듣고 내가 조금씩 다시 따라 하는 것 들을 배우는 것 들은 교육을 통해 가능하거든요.

우리 딸들도 다른 선생님께 공부를 해서 지금 큰애는 김죽파류를 , 작은애도 김병호류 김죽파류 따로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내년에 모녀 연주회를 기획하고 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계세요?

제가 지금 최옥삼류 보존회 전주지부장을 맡고 있거든요.
그래서 최옥삼류를 제자들에게 전수해 주는 게 첫 번째 일이고, 정읍풍류라는 민간풍류를 조금씩 발굴 해 내면서 연주도 하고 연구를 하는 작업도 하고 있고, 미술 작품과 융복합 작업을 하는 시도도 하는 등의 그런 다양한 새로움을 통해 저를 다른 색깔로 표현해 보고 싶은 포부도 있고 전주가야금 연주단은 고문역으로써 조금 더 대중하고 다가갈 수 있는 연주회와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16살에 시작한 가야금은 한번도 손에서 놓지 않은 제 인생이나 마찬가지인데 계속 연구하고, 저변 확대해 가면서 이 지역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10여년 전에 했던 가야오케스트라를 다시 귀환 시켜서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연주자는 무대에서 살고, 무대에서 죽는다고 믿는 사람으로써 창작을 해 나가면서 제 마지막 연주는 100여명의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서 한 소리를 내는 화합을 만드는 큰 음악을 해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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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치고

황은숙교수의 스승 김철진 가야금명인은 제자 사랑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황교수를 아꼈다.
우리 학교에 실력이 있는 좋은 학생이 들어 왔다고 40여년 전에 나에게 자랑 겸 소개를 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음 그 자신은 물론 제자와 우리 모두에게 국악의 아름다움과 가야금의 기품을 더 많이 알렸고, 가야금 세계에 큰 획을 그었을 사람이고, 또 하나 황은숙교수가 자기 제자임을 참 자랑스러워 했을 사람이다.

내년에 무사히 국악원의 교수 임기를 마치게 되는 황은숙 교수에게 시민으로써 감사의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연습과 연주에 깊이와 연륜이 더해지면서 모녀들이 이어가는 가야금의 전통음악의 맥의 흐름을 지켜보고 싶다.

"국악의 매력은 생명력"이고 "실하고 단단한 우리 소리는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준다."
“The charm of Korean traditional music is its vitality.” “The simple and solid sound of our traditional music lifts people’s spirits.”
“韩国传统音乐的魅力在于它的生命力。” “我们的传统音乐简单而坚实的声音振奋了人们的精神。”

황병기

- 우석대 국악과 졸업
- 전남대학교 박사과정
-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교수
- 전주가야금 연주단 고문
(사) 최옥삼류가야금산조보존회 전주지회장


사진 동영상__유기승
글__정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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