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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인주 메인 한글학교 안영례교장. 2019년 7월 한글학교 교장으로 訪韓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7-29 10:26 | 1,790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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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KBS 1기 입사
은퇴 후,미국에서 人生 UP-CYCLE
2019년 7월, 한글학교 교장으로 訪韓

메인주 메인 한글학교 안영례교장


#1.

재외동포재단에서는 매년 한글학교 교사 교장 초청연수를 한다.
올해는 7월8일부터 15일까지 경기도교육연수원 등지에서 진행했는데 미국에서 80명, 남미, 중국 브라질 스위스 세네갈 등등 교장 67명, 교사 159명 모두 226명이 교육을 받았다.
강용철선생의 ‘학급의 운영법’, 이지연교수의 ‘갈등에서 신뢰로’, 국악교육자 전송배 대표의 ‘신명나는 장단’등의 강의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고 참가자들의 직업도 목사 교수 현지교사 등등 아주 다양했다.
연수도중 방문한 독립기념관, 동대문 등 역사적인 현장은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자부심을 더 많이 느끼고 배우게 했다.

#2.

미국 메인주 메인한글학교 안영례 교장은 올 형편이 아닌데도 베우고 싶은 욕심 때문에 무리를 해서 이번 연수에 참여 했다고 말했다.
다들 처지가 틀리니까 그 나라에서는 어떻게 교육을 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 우리가 실패를 했고 어떤 면에서 성공을 했는가를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싶어서 왔고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KBS1기로 입사해서 회계, 광고등 다양한 업무를 하다, 결혼과 함께 미국에 가서 아이를 키우며 한글학교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지난해부터는 메인 주 한인회장도 맡으면서 8월 광복절과 9월 추석을 기념한 매년 양력 8월 2째 주 토요일을 ‘고향의 날’로 정해 한국을 기념하는 다양한 축제를 통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가고 있다.





Q 한글학교 교장 초청 연수로 오셨다구요?

미국에 갔을 때 한글학교 보조교사를 했어요.
처음에는 쓰레기도 치우고 뒷정리도 해주고 그런 식으로 봉사를 하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사가 됐고, 2018년 9월부터 교장이 됐어요.

이번에는 교장 100명, 교사 150분이 초청했는데 미국 중국 러시아 아프리카 여러 나라 많은 지역에서 오십니다.
전 세계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2천 600분이 열람을 했던데 그 중 제가 뽑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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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떻게 해서 이 일을 하시게 됐나요?

아이가 태어나서 2년 정도 키우다가 우연히 어떤 선배가 한국에 파견하는 군인들 한국말 단기교육을 하는데 2명에서 7-8명까지 한국말 ‘안녕 하세요’ 부터 시작해서 집중교육을 시키게 됐어요.
어떤 분은 한국말을 잘 하기도 하고 신문을 읽고 싶고 싶다는 분도 계시고 그래서 기본적인 것 조금씩 알려주다 아이가 5살 정도 돼서 한글학교를 갔어요.

영어 배우기 전에 한국말부터 배우게 했는데 아이를 토요일에 데리고 가면 저는 기다리거든요.
그 시간에 다른 선생님이 안 오시시면 보조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렇게 시작 한 거죠.


Q 한글학교를 소개해 주세요.

이번에 저도 놀랬어요. 전 세계에 다 있어요. 남미 아프리카 등등 많이 있더라구요.

저는 미국 메인주에 살아요.
면적은 우리나라 남한 면적하고 비슷해요.
인구는 20% 한국 분들은 많지 않고 한 2천명 정도 사는데 내가 한국인이다 나오시는 분이 많지 않아요.

우리학교 선생님은 6명 학생은 28명.
수준도 틀리고 환경도 틀리고, 학생들의 성의도도 틀려요.
학교 교과서는 영사관을 통해서 한국에서 재외동포들을 위한 교재를 만들어줘요.
내년에 쓰려면 몇 명이 어떤 수준이다 라고 생각해서 주문을 하면 그 다음 9월 학기부터 쓸 수 있고, 나머지는 선생님이 자체적으로 연구도 하고 여러 가지 종합을 해서 수업을 해야지 교과서만 가지고는 어려워요.


Q 메인 한글학교 프로그램은요?

2014년에는 한글 말하기 대회에서 뉴잉글래드에서 1등을 해서 본선에서 금상도 받았어요.

2016년에 한국 설날에 행사를 했는데 로컬TV chN에서 뉴스도 방영 했어요.

병을 붙여서 태극기 달고 북 모양을 만들어서 연습도 시키고 저는 징을 쳤어요.
한복 입고 세배 하는 법도 가르치고 힌국음식도 먹고, 한글 뮤지엄에 8개월 동안 사물놀이에 대한 의상, 징, 장고 악기도 전시하고 제사를 어떻게 지내나 모형과 병풍까지 진열을 했죠.
남자 여자 한복도 걸어 놓고 입어 보기도 하고 북 장고도 쳐보게 하고 영상도 만들었어요.
24시간 자동으로 돌아가게 해서 한국의 풍속도 소개하고 보스턴에 있는 인터넷 신문사가 있는데 그곳에서 주최하는 독도 에세이에서 1등상을 받아서 독도를 다녀오기도 했죠.

미국학교에서 아시아의 날에 한국을 소개 해 달라는 요청이 오면, 한복 팽이 부채 음식 등등을 가지고 가고, 한복도 입고 탈도 전시 하고.
그러면 색다른 문화에 많은 호기심을 갖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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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국 갈 때 이런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요. 아이를 낳으니까 어떤 말을 먼저 시켜야 하나 고민도 되고.
그곳은 다른 주에 비해서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국말을 가르쳐야 한다는 부모님들이 많지는 않아요.
저는 영어도 서툴고, 한국말을 아이가 먼저 배워야 의사 소통이 되쟎아요.
남편이 또 한국말을 먼저 배우라고 해서 젖먹이 때부터 한국말을 시작 했어요.
한국말을 또 반말로 가르치면 안돼서 존대말을 쓰기 시작했죠.
처음부터 입으세요, 앉으세요 등등..
나중에 한글학교 갈 때도 도움이 되고 또 한국에 나와서도 존대 말을 쓰니까 버릇없다는 소리를 안 들어서 좋아요.


Q KBS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계셨어요?

1973년에 입사해서 1990년도까지 일을 했어요. 17년 정도 일을 했죠.

고사동 시절 옛날 구 건물이죠.
그때는 처음에 라디오만 했어요.
공사 1기로 들어갔죠.
회계 일을 했고 금암동에 새 건물로 갔다 서울로 올라갔죠.

이번에 새로 지은 방송국에 가보니 너무 좋았고, 한국에 올 때마다 참 많이 발전을 하는구나 생각해요.

한국 정부에 감사해요.
미국에 있으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아무것도 아니지만 으슥해 지기도 하고 기가 죽기도 하고.
외국에 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맞아요.
한국 차가 지나가면 관심도 더 갖게 되고 애국심이 자극이 되요.


Q 학교일이 힘들 때는요?

학생들 수준이 너무 차이가 나요.
일주일에 한번만 3시간씩 하거든요.
32주를 해야 학교로써 인정을 받아요.
그래야 한국에서 교과서도 지원을 받고, 건물이 별도로 있는 것도 아니고 교회나 공공시설 무료로 빌려서 하는데 선생님께 교통비 정도는 드려요.
정부에서 약간의 보조금이 나오니까 학생들에게 약간의 돈을 받기는 하는데 최저 임금도 못 주는 거죠.
워낙 수준이 다르니까 선생님들이 힘들어 하시고 그러다 한두명이라도 성과가 나오면 좋아요.
가나다라 하는 것보다 무용이나 음악을 듣게 해서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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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도움이 필요하진 않나요?

정부가 교과서를 도와주고 보조금 약간 나오고 선생님들이 현지에서 다 자기 일이 있거든요.
미리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정부 입장에서는 보조금을 좀 주니까 서류정리를 해서 보내라 뭣을 어떻게 해라 그렇게 하면 시간을 많이 뺏기거든요.
교장 입장에서는 아쉬워요.
선생님들께 보수도 드리면 그 분들께 덜 미안하고.
그래도 선생님들이 봉사정신이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하죠.


Q 미국에서 장애 환자를 돌보신다구요?

장애자를 돕는 일을 해요.
어떤 분은 지능이 낮아서 50-60살이어도 3-4살 수준인데 어떻게 하면 이 분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자신감 있게 사시게 할까도 생각하고 배우고 공부해요.
그러면서 학생들도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까 고민도 하고..

미국은 장애자들에게 하는걸 보면 감사하고 복 받을 나라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장애자가 아무리 화를 내고 우리에게 싫은 소리를 해도 절대, 화를 내거나 우리 나름 데로 체벌을 하거나 하지 않아요.

워낙 힘들면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서 협조를 받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고 지도하죠.

프로그램을 4시간 하면서 그들이 이 일을 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거죠.
그래서 나 프로그램을 간다가 아니라 오늘 나 일하러 간다는 생각을 하게 하죠.
간단한 일거리 옷을 옮기게 하고, 접게 하는 등등 그것도 어렸을 때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그 일을 도우면서 까지 장애자를 배려하는 마음은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예요.


Q 인생 전반전과 후반전이 너무나 다른데 만족 하세요?

지금 아주 좋아요.
방송국에서는 성취감을 많이 느꼈는데 미국에서는 가장 중요한건 사람이고, 자기가 주어진 일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해요.

아이들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한국은 참 멋있는 나라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게 봉사하고 싶어요.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정말 보람이 있었고 즐거웠고, 큰 성과가 나왔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음 제 생애에서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를 마치고

방송국에서 일할 때 영상매체에 관심도 있고 프로그램도 많이 봐서 아이들 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율동도 시키고, 노래도 가르치는 산 교육을 하니까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특히 간식 시간을 이용해서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심이 필요 할 때라고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역사교육을 시키려고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1절에서 5절까지 외우게 하고 부상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김도 주고...
6살 정도 발음도 잘 안 되는 아이가 외워서 부를 때, 애국가도 4절까지 다 외워서 부를 때도 보람을 느낀다고.

교육을 마친 후 전화 통화를 했다.
이번 연수 교육이 큰 도움이 됐고 앞으로 더 한글학교와 한인사회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재능보다는 행복하기를 원했고 나보다는 공동체 삶속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뉴잉글랜드에서는 메인 한글학교가 작지만 야무진 학교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나라 사랑하는 한마음이 되어야 할 지금 우리말을 가르치기 위해 봉사하는 메인 한글학교 선생님과 안영례 교장선생님께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 사진 동영상 : 多陽
? : 김세영 방송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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