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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프론티어 전주세계소리축제 박재천 집행위원장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0-20 15:10 | 1,188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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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프론티어 Sound Frontiers
전주! 세계! 소리! 축제! Jeonju! World ! Sound ! Festival !
폭 넒은 음악 스펙트럼 Broad Music Spectrum

전주세계소리축제 박재천 집행위원장

#1.

2021년 10월 3일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막을 내렸다.

박재천 집행위원장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예술제로의 실험’을 표방해, 전통음악의 원형과 변형을 시도했고,
당초 공연도 150개에서 26개로 줄여 실내 중심으로 배치했으며,
임펙트가 강한 공연을 엄선하므로 관람객의 집중도도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전주의 역사·문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포용할 수 있는 축제로 거듭 나겠다고 밝혔다.

#2.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문 순수 연주 중심의 프리뮤직을 지향하는 부부 뮤지션인 박재천위원장과 미연 부부는 음악 동료로서 친밀도와 이해가 바탕이 된 장대하고 폭발적인 동 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 작업을 해 왔다.

젊은 시절 음악 현장에서 연주를 하다, 오래된 시스템을 갖추고 확장성을 갖고 있는 클래식부터 국악, 재즈, 월드뮤직까지 20살부터 다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프론티어 시즌 2’를 통해 과연 이 시대에 우리의 레퍼런스이고 후배 미래 세력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그들이 정말 하려고 했던 것들이 뭘까? 뭐를 도와야 할까? 고민이고 함께 하고 싶어 한다.

음악가 박재천의 인생 이력은 이렇다.

1980-1981 .....그룹 ‘신중현과 뮤직파워’
1984 ..... 중앙대학교 작곡과 졸업
1991 ..... 록 판소리그룹 ‘사주팔자’
1993,94 .....재즈 록 그룹‘몰이 모리’로 데뷔
1999 ..... ‘미연 & 박재천’
2002-2006 ..... 월드타악 프로젝트그룹 ‘Drum on Drum’
2009 ..... 제 5회 한국음악상 최우수 연주상
2014,2021 ,,,,,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Q 본인 소개를 해 주세요.

어린 시절부터 연주자로 살았고
다양한 경험과 우리가 익히 들을 법한 클래식 음악, 재즈, 월드뮤직 등등 기본적으로 락과 팝은 기본이었고,
필드 생활 경험을 하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진 축제인 전주세계소리축제의 9년째 같이 일하고 프로그램 만들고 연주 하면서 喜怒哀樂을 즐기면서,
단순히 우리 조직의 식구 뿐 만이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과 그동안 필드에서 경험했던 조직에서의 관계를 어울려 가면서 즐겁게 일을 하고 있는 박재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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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주세계소리축제 처음에는 연주자로 오셨다구요?

2011년에 출연자로 왔지만, 지금도 마음은 같아요.
전주 세계소리축제에 많은 예술가들이 가고 싶어 했고 위상이 높았어요.

저 같은 경우는 장르가 다르다보니까 불러주지 않았기 때문에 억지로 노크를 했어요. 불러달라고..

그때는 재즈가 아니고 ‘코리안 그립’이라는 것을 개발해서 한국 장단 드럼 연주법을 개발 했을 때였고,
이건 가서 연주할 수 있겠지 희망을 가지고 왔었고,
그 때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기대와 기쁨을 잊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기대와 기쁨을 가지고 축제를 만들어 낸다는 생각을 관통시키고 있는 거죠.


Q 전주세계소리축제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각 나라의 모든 유명한 축제들은 수도에 있지 않아요.
다 지역에 있어요.
왜냐면 전통문화는 지역의 로컬문화, 어떤 매혹적인 이미지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전통의 축제이거든요.

전주 당연히 전주가 되어야 한다는 합리성,

세계 이 말이 국제라고 붙었으면 촌스러웠을 거예요.
같은 단어이지만 세계라는 말이 붙으면 이건 월드지향이고,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세계 최고라는 위상의 문제를 떠난 세계라는 모든 것을 포괄 하겠다는 임의가 들어있거든요.

소리 소리의 판자가 빠져있었어요.
이걸 판소리라고 주장하고 우겨대기 시작하면 기득권이 되는데
소리라고 띄어내다 보니 소리는 노래가 되고,
사운드도 될 수 있겠고,
마지막으로는 우리 판소리라는 궁극적인 목적까지 다 포함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소리라는 영역이 커졌잖아요?
쏭 페스티발 했으면 노래만 왔었을 거예요.
가요대제전이 됐을 거고, 사운드 페스티벌하면 electric 노이즈가 들어오고.
그러나 소리라는 영역으로 넓히니까 세상의 많은 소리들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축제 당연히 축제이다 보니 사람이 모여야 되요.
여기는 관객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이 4가지가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매우 기대감과 흥미 속에 수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만들고
관객의 눈높이 예술가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겠고,
그 실험들이 대부분 적재적소에서 성공을 했던 것 같습니다.


Q 올해는 전주세계소리축제가 20회이잖아요?

내가 몇 살 때 가장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을까?
가장 뭔가 세상에 대한 욕구 욕망 사회성이 뛰어날까 봤더니 20대 였던 것 같아요.

전주세계소리축제가 20년이 됐어요.
물론 40년 50년은 역사성이 길다라는 관점은 있겠지만 20세 라는 건 신선하게 느껴져요.
뭔가 일을 하겠다라는 부모로서 기대감도 있고, 세상에 대한 기대감도 있어서,
중요한 한 해인데 작년부터 코로나-19라는 묘한 세상을 만나서 작년 19회 때는 굉장히 좌절을 했죠.

방어하기에 급급했고 피하기에 급급했고 그러다보니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더라구요.

19년동안 쌓아 올렸던 것이 한번에 다 무너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당황스러움은 말도 못했죠.
솔직한 심정으로는 축제를 아예 취소하고 싶었어요.

아니다 이런 시기는 또 올 수 있다 이런 시국에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면서 단순히 작년에 디지털 개념과 비대면 등등 수많은 언어들이 탄생을 했거든요.

그 언어에 함몰되지 말고 현재 우리가 쓸 수 있는 문화적인 메카니즘과,
새로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을 같이 하자는 저의 요구와
많은 조직 식구들의 깊은 고민이 오히려 새로운 물꼬를 튼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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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셨는데요?

드럼을 처음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고, 고적대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로 생활을 하다 보니 나이 20세 전후해서 상당히 그 세계에서 유명해 졌어요.

그러다 보니 아 우리 음악이 뭔가 있을 텐데
그래서 우리 음악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다보니 서양의 클래식 음악도 알아야겠고,
20세기 들어서 인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재즈도 배워야겠고,
우리 것은 뭐가 있지?
김소희, 박귀희 선생님께 공부를 하게 됐고.


Q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이야기도 많죠.

1회 때부터 많은 문화예술관계자들이 의견이 상당히 있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쩌면 우리 축제 10년 동안 발전보다는 그 문제에 대한 정리정돈 정체성의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아요.

저도 그 애기를 들었고.. 축제에서 그 의도는 너무 좋아요.
창의적인 곡을 만드는 것은 맞지만 주도적으로 한 개인한테 그걸 만들게 할 수는 없어요.

누구라도 한 개인이 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주관된 편견 된 작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고..
창작 창의라는 너무 좋은 시스템을 이걸 시장 논리에 맡기자.

그래서 2013년부터 기획한 모든 프로그램이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올 때는 모든 국악인들 예술가들은 했던 걸 가지고는 못 온다..
뭔가 이 축제를 위해서 한 꼭지라도 만들어서 오게하자.

우리가 직접 제작에 나서지 말자 그렇게 풀기 시작해서 많은 예술가들이 이 축제에 출연을 하려면 그냥은 못간다.
뭔가 다른 게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해 주셔서 저로서는 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Q 소리 프런티어 애기를 좀 해보죠.

소리축제 프런티어는 지금까지 10년 동안 젊은 친구들이 국악을 어떤 순위와 랭킹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경쟁 개념이었어요.

이건 더 이상 안 된다, 그들이 만드는 작품은 어떤 한 장르에 치중을 해서 종목이 같을 때 경쟁이 되는 거지,
각기 생각과 문화의 영역과 창작성이 다른데 어떻게 경쟁이 돼서 순위를 매기느냐.
그러지 말고 같은 예산을 가지고 뭔가를 새롭게 하려는 사람들을 뽑아서 그걸 하게끔 지원을 해주는 창작 시즌 2로 바뀐 거예요.

competition이 아니라 창작 공모내지는 응모 또는 우리 축제에서 먼저 만들어서 우리가 지원을 해 줄게.
단순히 예산지원이 아니라 우리 축제 강점 지원도 해주고 그 최고의 공연을 소리축제 때 하게 해 준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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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양한 장르의 전문적인 문화기획자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요.

디테일의 문제예요.
이 디테일 감각이 뭔가를 신선하게 만들고 더 선하게 만들고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 디테일인거든요.

우리 축제도 그래요.
항상 디테일 신경을 너무너무 많이 써서 저희 직원들이 아마 피곤할거에요.
최종의 완성은 디테일이거든요.

이 디테일이 무대 구성은 기본이고,
운영의 방식 홍보의 방법, 관객 표정에서 오는 그때 그때 케치해야 하는 것들 등등...
연주가들의 그날의 컨디션,
우리가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고 초대 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까 아니 것,
이런 모든 디테일들을 끝도 없이 체크를 해야 하는데 이 디테일은 심미안적인 어떤 예술적인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것은 축제를 만드는 우리 조직이랑 축제를, 기획을, 작품을 만드는 구성하고 연출하시는 스텝들이나,
또 필드에서 막상 뽑혀서 실행하는 연주가까지 모두가 그 디테일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Q 지금 부터는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안정적인 축제로 자리매김 해야 할 때잖아요?

어쩌면 이 코로나-19로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몰매 맞을 소리인데 저는 로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과정을 안 겪었으면 20주년 이후 우리 축제의 방향, 그리고 20살이 넘은 청년으로써 세상에 나가서 힘차게 살아가야 할 최고의 나이일 때 아마도 방종했거나 오만방자했거나 아니면 굉장히 기가 죽었거나 그런 아이가 됐을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얼마나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 봤는지 모두가 너무나 큰 성장을 했다고 생각을 해요.

내년 까지가 제 3번째 임기에요.
모든 생각이 이 축제가 미래 20년을 가려면 무엇을 내가 바꿔줘야 할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축제 조직의 시스템 단순히 인적 구성 뿐 만이 아니고, 기획적인 마인드, 대회 가치에 대한 마인드를 어떤 시스템으로 바꿔야 하나,
그 시스템이 빨리 무너지지 않고 좀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 하는라 요즘은 거의 딴 생각을 못해요.

좀 초조할 정도예요.



*** 인터뷰를 마치고

참 너그럽고 예민했고, 부드러웠다.
음악동반자인 아내 미연과 함께 세계음악 이라는 꽃을 피워 내면서
전주세계소리축제로 그의 음악 기획력이 열매 맺었으면 좋겠다.

충돌의 미학, 즉흥앙상블, 타악연주가 박재천음악가

1980-1981 .....그룹 ‘신중현과 뮤직파워’
1984 ..... 중앙대학교 작곡과 졸업
1991 ..... 록 판소리그룹 ‘사주팔자’
1993,94 .....재즈 록 그룹‘몰이 모리’로 데뷔
1999 ..... ‘미연 & 박재천’
2002-2006 ..... 월드타악 프로젝트그룹 ‘Drum on Drum’
2009 ..... 제 5회 한국음악상 최우수 연주상
2014,2021 ,,,,,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최근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평가한 나의 키워드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

#박재천 음악가 키워드
#영향력 충돌 탄생 아방가르도
#판소리 잡단즉흥 시뮬레이션 도전
#연주 음악언어 원류 탐구


사진 동영상__유기승
글__정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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