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글쟁이’ 牛笑 소소 세상을 보고 소처럼 웃어요. 내 꿈은 시니어 4H 촌장 박영배 맥스미디어 대표(전 한국경제 논설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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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글쟁이’
牛笑 소소 세상을 보고 소처럼 웃어요
내 꿈은 시니어 4H 촌장
박영배
맥스미디어 대표(전 한국경제 논설위원)
#1.
2018년 10월 18일 전북에서는 역사적인 전라도 천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전라도 3개 시도는, 2018년을 천년 역사의 재정립과 새로운 천년 도약의 해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전라도 사람 맥스미디어 박영배 대표는 전라도 천년이라는 책을 올 초에 내면서, 앞으로도 전라도의 역사적 의미를 재정립하는 다양한 책을 기획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버트란트 러셀이라고 불리는 수학자 김영훈 교수의 ‘역사의 역습’을 추천했다.
카오스 시대,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동북아가 어떻게 변해가고, 그 가운데 우리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를 말하고 있다.
독서의 계절 이 가을에 이 두 권 의 책만이라도 꼼꼼히 읽어보면 전라도와 한국인이라는 의미와 정체성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2.
박영배 대표는 작년에 전라도 천년을 기획하면서, 전북대 강준만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전화를 한 적도 없고..
그런데 바로 “영광입니다. ‘야망과 문명의 두 얼굴’ 쓰시고 ‘미국현대 문명보고서’ 쓰신 분 아니십니까”?
“어떻게 저를 아시죠”?
“저는 미국 관련 책이 나오면 다 사보거든요. 근데 가장 많이 이용한 게 선생님 책이거든요. 그래서 기억하지요”.
이미 다른 출판사와 책이 계약 돼서 같이 작업은 못했지만, 그 때 참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야만과 문명의 두얼굴, 게이레즈비언부터 조지부시까지를 다룬 ’ 미국현대 문명보고서‘는 5년간의 미국 특파원과 30년간의 해외취재를 통한 미국생활과 진정한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Q 고향은 어디세요?
낳기는 전주인데, 완주 용진에서 좀 살았어요. 지금도 선영은 거기에 있어요.
어렸을때 4H 활동을 했었어요. 완주군 대표로 뽑혀서 서울 수유리에 교육도 받으러가고 그랬어요.
내가 사실 그 쪽으로 나갔으면 지방에서 국회의원도 몇 번 했을 거예요.
아직도 내 마음속엔 계몽이라는 생각이 있어요.
더불어 살면서, 우리 전체가 레벨 업이 되는 것. 그래야 좀 고급스러워지고 대화가 되거든요.
꿈이 있다면 좋은 대화 사랑방을 만들어서 잡지도 만들고, 좋은 책도 만들고, 같이 읽고, 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같이 걸으면서 대화도 하고 정자나무 토론도 하고 이런 것 들을 하고 싶어요.
Q 출판사는 언제부터 하셨어요?
거의 10년이 되 가는데요.
제 2의 인생을 어떻게 살까 신문사 다니면서 많이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스포츠 잡지를 한번 만들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 있어서, 스포츠 전문기자를 모아서 창간을 햇죠.
100호까지 했어요. 100호니까 거의 10년을 했죠.
일종의 출판이라, 책을 만들게 됐고, 처음에 맥스미디어라고 어른 책만 발행 하다가, 상수리 출판사라고 하는 아동 전용 출판사를 만들었죠.
상수리 출판사는 상당히 알려져 있어요.
상수리 나무가 내 3끼 밥을 먹여 줘요.
Q 그동안 어른, 아이를 위한 책은 몇 권이나 내셨어요?
맥스미디어에서 나온 게 한 80여종, 상수리 나무에서는 약 200여종이에요.
교육, 인문서적 주로 건강 책을 만들죠.
해독쥬스 같은 책은 내가 필자를 찾아가서 만들어서 해독 쥬스 붐도 일으켰어요.
영어 책은 프렌차이즈 사업인데 제가 뉴욕 특파원을 할 때 우연히 FTK를 보게 됐는데 영어 영재교육인데 굉장히 합리적이고 또 과학적 이더라구요.
우연히 이쪽 사람하고 연이 닿아서 교재 300종을 발행을 했어요.
흔히 어른들이 동화책을 쓴다든지 어린이 책을 만들 때 굉장히 쉽게 생각을 하는데 어린이 책 쓰는 게 더 어렵거든요.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을 해요.
맞추지 않으면 책을 만들 수가 없어요.
Q 언론계 입문은 언제 하셨습니까?
78년에 언론에 들어왔다 80년에 해직기자가 됐고, 7-8년간은 국회의원 비서관도 했고, 일반 기업체도 있었고, 그 당시 해직 기자는 다른데 취직을 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87년 88년 자유의 봄이 오고 언론 환경이 좋아졌죠.
그때 한국경제 신문에 갔어요.
얼마 후에 미국 특파원도 갔고 미주리 주립대학 저널리즘 스쿨 유학도 했고, 현역 기자로써 그 당시 내가 해외취재를 제일 많이 다녔어요.
1989년 90년, 동 베를린 무너지고, 동 구라파에 민주화 소용돌이에 있을 때, 취재를 했고,
소련과는 수교가 이뤄지지 않고 코트라만 나가 있을 땐데, 유럽에 가서 비자 받아서 모스코바에 제일 먼저 들어가서 취재도 했고...
우리 신문에 천자 칼럼이 있었는데 8년 동안 격일로 천 꼬지 이상을 썼어요.
거기서 다양한 호기심이 많이 쌓인 것 같아요.
Q 미국에서 공부도 하고 특파원도 하셨는데 보고 느낀 건요?
미국은 조그마한 커뮤니티에서도 신문이 나와요.
신문에서는 영희네 집은 개밥을 뭐 주는가 부터 시시콜콜 신변잡기가 다 있어요.
사람들이 다 사 봐요.
내가 미국에서 신문들을 죽 보고 와서, 그 당시 기자 협회 활동을 하면서, 지방 신문에 종사하는 기자들한테 이렇게 신문을 만들어 보라고 많은 조언을 한 적이 있어요.
미국의 경쟁력은 인종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하지만 칭찬하는 문화라는걸 발견했죠.
예를 들어 미국 동네 잘난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잘난 사람의 박물관을 만들어요.
작지만 이 사람이 공부 했고, 뭐 좋아하고, 어떤 교육을 받고 항시 모델을 만들어요.
그걸 보면서 아이들이, 이웃들이 보면서 배우는 것 아니겠어요?
뉴욕은 세계의 수도라고 하는데 정말로 뉴욕에서 보면 세계가 다 보여요.
정치는 워싱턴이라고 하지만 그것 빼고는 다 뉴욕 이예요.
거기에서 온갖 경험을 다하게 됐죠.
Q ‘미국, 야망과 문명의 두 얼굴’, ‘미국현대 문명보고서’는 언제 쓰셨어요?
미국 특파원 귀국 후 그 이듬 해 썼어요.
1998년 사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제가 특파원 발령을 받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어요.
미국에 관한 책이 이민 이런 것 빼고는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자료 수집을 하게 됐는데, 다행이 우리 집사람이 미국사를 공부하기 때문에 많은 교수들을 만날 수가 있었어요.
사실은 공저 한거나 다름 없어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가니까, 미국 사회가 눈에 많이 보였어요.
자료를 모을 수가 있었고, 책을 썼는데, 그해 나오는 인문서 100권중 한권이 영광스럽게 이 책이었어요.
그리고 미국 문명사를 썼어요.
말하자면 후속편인데 그 책도 인기가 좋았어요.
Q 재외동포 저널 일도 하시던데요?
해외에 나가 있는 교포 신문들이 있어요.
이 분들의 모임이 해외동포 저널 연합회인데. 3년 전부터 책이 5권이 나왔어요.
이 책에 편집인으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분들한테 교포신문을 어떻게 좀 만들었음 좋겠다 조언도 하죠.
올 초에도 특강을 했는데 교포신문을 어떻게 만드는가 제가 잘 알거든요.
교포 신문은 한민족의 역사의 뿌리를 캐는 발굴자가 되야 한다. 그런 기자가 되라.
우리의 뿌리, 애국 운동을 한 사람도 있고, 기업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도 있고,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있고,
이런 분들을 교포 신문에서 보도도 해주고, 그런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모아 책도 좀 만들고,
인터넷에서도 올리고, 여러분의 수익 사업도 하고.. 그런 말을 많이 하고 있어요.
해외동포가 700만이 있는데 이 사람들을 묶을 수 있는 건 미디어거든요.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으로 그 자체가 우리 힘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좀 모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Q 젊어서는 4H 활동, 요즘은 해비타트 등 재능기부를 많아 하시는군요.
4H활동을 재미있게 했고, 그 뒤에 해비타트를 하는데 무주택자들 집 지어주고,
지금은 집 지어주는 것 외에 수리도 해 주고, 집을 지으려고 하니 땅 값이 너무 비싸서 도저히 후원금으로 짓기가 힘들어요.
지으면서 수리해 주고 이런 일에 더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Q 앞으로 어떤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으세요?
잡지 만들고, 책 만들고.. 이걸 하면서 정말 뜻 있는 사람들하고 모여서 지방이나 산골들 빈 학교들이 많거든요.
그런데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 사회 활동하는 사람들은 사회활동 등등, 어울러져서 세미나도 하고, 교육도 좀 하고,
그건 좀 너무나 스케일이 큰 일이라 돈을 좀 벌어서 그 일을 할거예요.
*** 인터뷰를 마치고
인터뷰 내내, 같이 있었던 그의 후배는, 탈탈 털렸다고 할 정도로 긴 시간 다양한 질문에도 웃으면서, 성의껏 심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답을 했다.
세상을 보고 소처럼 웃는 삶인 소소라는 책에서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 사회 다양한 이야기 환경 풍습 유행 인생 음식 등등을 썼다.
고등학교 이후 서울에서 살지만, 내 고향 전라북도가 좀 세련 됐음 좋겠다고 했다.
처가가 안동인데 그 곳에 가면 전주 양반고을에서 왔다고 반기는데, 안동은 이미 10년 전에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구호를 붙였고 이건 당연히 전주가 아니냐고 되 물었다.
하나의 구호가 사람들의 의식을 좌우하고 의식이 있으면 행동이 따라간다고..
牛笑 소소... 세상을 보고 소처럼 웃어요.
? 사진 동영상 : 多陽
? 글 : 김세영 방송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