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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슬픔의 이중주 ‘해외입양 아픈역사 치유하길’ 올해의 필란트로피스트 뿌리의집 김도현 원장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7-10-17 13:40 | 2,483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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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슬픔의 이중주
‘해외입양 아픈역사 치유하길’
올해의 필란트로피스트

뿌리의집 김도현 원장


#1.

“입양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너는 스위스에서 좋은 부모 만나 학교도 다니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사느데 만족스럽지 않니?”
“지금 저의 외적인 모습은 그저 스위스의 평범한 젊은이일 뿐 이예요. 하지만 저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이별은 안고 살기에, 평범할 수 없어요”
20년 전 뿌리의 집 김도현 원장이, 스위스에 있을 때 한국계 입양인과 처음으로 대화한 내용이다.
그는, 스위스에서 9년간 선교와 영국에서 3년간 입양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조국과 친어머니에 대한 서글픔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했다.

#2.

지난 4월, 김도현원장은, 종교와 이념 지역 등에 구애 받지 않고 기부 봉사, 자선 등 박애주의 정신을 실천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올해 '아시아 필란트로피 상 (APA)' 수상자로 선정이 됐다.
필라트로피는 고대 그리스의 합성어로 ‘사랑한다’는 뜻의 필로 와 ‘사랑’을 의미하는 엔트로피의 합성어로 “사람을 사랑한다‘ 즉 인류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2004년부터 뿌리의집을 통해, 많은 해외 입양인의 모국방문과 한국 체류를 돕고, 7월 12일에는 국내외 입양단체등과 연대해서 ’광화문 1번가’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 “산업화된 대한민국 해외 입양 제도의 즉각적인 종결을 촉구”하는 입장은 담은 선언문을 발표하고 전달하기도 했다.




Q 목사님은 뿌리의 집 운영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2004년부터 13년 됐습니다.
스위스에서 9년을 살았어요.
한국 담당 목사로 스위스 한국 사람을 위한 목회자로 일을 하는 중에 스위스에 살고 있는 한국인 입양아들을 위한 목회를 같이 하게 됐어요.
그런 일이 인연이 되어서 영국에서 3년 동안 한국에서 입양한 아이들과 한국의 친 생모 관계성에 대해 연구를 했고, 그 논문을 마칠 무렵에, 뿌리의 집을 만든 분들이 이 일에 어려움을 느껴 좀 더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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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그 전에 입양에 관한 관심은 없으셨어요?

사실, 스위스 가기 전에는 잘 몰랐죠.
스위스에 살고 있는 한국 입양인인 1100명 정도.. 그리고 그 사람들이 20살에서 25살 정도 되는데, 대개 입양인들은 15-16세에 한번 정체성 혼란을 겪어요.
자기가 모습도 다르고 먼 나라에서 왔고, 그 문제에 대해 10대 초에 고민을 많이 하는데, 한국 목사니까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해서, 93년부터 스위스를 떠날 때 까지 한국 입양인하고 정말 다양한 대화와, 문화체험등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Q 주로 어떤 일을 하시면서 시간을 보내셨어요?

그 당시 23살의 한국계 입양인이 자살을 했어요.
그래서 그분의 가족들, 그리고 한국계 입양인 친구들과 슬픔은 나누면서, 이 일이 시작 됐는데요,
그 후 스위스에 한국계 입양인 들의 조직이 만들어졌고, 한 달에 한번 토요일을 같이 보내면서, 한국영화도 같이 보고 대화하면서, 한국을 공부 하고, 김치도 만들고, 2월이면 스키 주간을 만들어 같이 지내고, 한국을 여행 할 경우 통역도 소개하고....
대부분 이 사람들이 가족을 찾기 원하는데 제가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입양인들이 한국 가족을 찾겠다고 신청서를 넣으면 2년 3년 4년.. 답이 없었는데.. 그분들이 서류를 가져오면 제가 바로 연락을 해서, 한국 입양기관들의 협조를 받았어요.
스위스 입양인들은 좀 나이가 들어서 갔거든요. 3살 4살 5살...그래서 원래 가족들하고 관계가 확실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가족 찾기가 쉬웠고. 또 많이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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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목사님이 그 일을 하시기 전에는 스위스에 입양에 대한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나요?

네 전혀 없었죠.
입양인의 경우 스위스는 5-6년 늦게 시작 됐어요.
그 당시 23살에 세상을 떠난 입양인 친구가 책을 한권 남겼어요. 그 책을 들여다보고 아! 이 친구들이 이렇게 살았구나 이런 아픔과 이런 어려움이 있었구나 알 수가 있었어요.
또 스위스 국영방송에서 이 친구하고 인터뷰를 했어요.
그 인터뷰를 통해서 자기가 겪었던 삶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게 됐죠.
스위스는 복지 국가이고 경제적인 문제는 거의 없어요.
그러나 입양인들은 외모가 다르고 게다가 친 가족이 아닌 곳 에서 성장을 하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과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게 참 인위적 이거든요.
그래서 더 다양한 노력이 필요 했던거죠.


Q 입양인들, 특히 해외로 간 사람들이 더 큰 문화 충격을 느끼겠네요?

문화를 상실하고, 친 가족을 상실하고, 언어를 상실하고, 한국의 모든 관계를 상실한 채, 이 아픈 경험은 가슴 깊은 곳에 남아있고, 그런 것 들이 인생을 걸어가는 가운데 큰 흔들림을 준거죠.
그리고 자기의 친가를 잃어 버렸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 일부를 상실한거죠.
사람이 자기 존재 일부를 상실했다는 것, 그것을 회복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자기 존재의 온전성 을 갖고자 하는 깊은 추구가 있죠.
그런 과정속에서 함께 모이고, 위로하고, 마음을 나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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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문제는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고 보고, 13년 전에 뿌리의 집 시작 했을 당시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뿌리의 집을 설립하신 분이, 한국 사회에서 시민운동을 하신 분이예요.
북한도 가고, 고려인, 조선족, 입양인도 만나고..
그러면서 그 분들을 우리 사회가 끌어 안자 움직임이 있었는데, 스웨덴의 어느 입양인 이 자기가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다는 애기를 했어요.
그래서 그 분이 자기가 살고 있는 좋은 주택을 리 모델링을 해서 입양인들 이 모국 방문을 했을 때 이용 하라고 내 놓은 집이 바로 뿌리의 집이예요.
그래서 입양인들이 여기에 와서 따뜻한 안식처가 되고 모국의 따뜻함도 느끼고, 가족도 찾고 따뜻하게 지내라는 생각해서 시작이 됐고, 전문가를 찾다 저를 만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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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뿌리의 집을 운영하시면서 어떤 점에 가장 신경을 쓰시나요?

기본적으로, 뿌리의 집이 해외 입양인들 이 모국을 방문하는 곳이니까, 그 기간 동안 이분들이 따뜻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특히, 고국방문이 긍정적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일이예요.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아동 양육을 제대로 못한 나라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됐어요.
지금 우리가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아이를 살기 좋은 방식으로 사회를 만들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들고, 낳기도 힘들죠.
그런데 그중 대표적인 현상 하나가 입양이라고 생각해요.
스위스에서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일이, 입양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 아이가 원래 입었던 상처를 생각하게 됐어요.
이별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아이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또 아이를 입양 보낸 엄마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기는 아픈 일 인거에요.
불가피하게 생긴 상황이라면 당연하지만,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일에 너무나 관심이 없다는 게 제 생각이고 입장이어서 앞으로 이런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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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위스에서 입양사역이 한국에서 이 일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요?

원래, 한 가족을 제대로 보호를 해서, 아이가 부모로부터 이탈 하지 않도록 하는게, 우리 뿌리의 집 가장 큰 방향입니다.
그건 사실 스위스 입양인에게 배운 일이고. 또 영국에 가서 한국의 친 생모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느낀건데 한국 사회는 양육 실패라고 생각해요.
한 아동이 엄마를, 그리고 자기 장애를 선택해서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극빈가정이다 미혼모의 아이다 장애아다 그 이유가 그 아이를 원 가족으로부터 떼어내야 할 이유는 아니거든요.
그 아이의 인권을 생각하면,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일로 인해 엄마와 헤어진 일생일대의 가혹함을 경험하는데, 여기에 대해 우리 사회가 깊이 통찰하고,
가급적이면, 그 아이가 헤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미혼모에 대한 지원과 인식도 바꾸고, 자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사회체계를 잘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10년이 지난 지금 느끼는 자부심은?

다른 사람은 아직도 슬픈데,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건 좀 무례한 일이지만 아직도, 입양인 들이 너무나 많은 슬픔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이 일을 더 해야 해요.
그러나 고마운 건 뿌리의 집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돌아가서, 자기들을 잘 이해해 주고, 편히 지낼 수 있었다고 알려서. 전 세계 입양인과 뿌리의집과 네트워크가 강하게 이뤄 진거예요.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스위스, 미국 뉴욕 이런 도시마다 입양인 들의 공동체가 있고, 이곳과 우리가 연대해서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 내부에, 입양인 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진지가 구축이 돼 있다고 그들이 생각 하는 게 큰 보람이죠.
뿌리의 집 기본 입장은 우리는 입양인 을 위한 소리통이다, 그들이 소리를 내면 한국 사회에 좀 더 그 소리가 크게 울릴 수 있게 하는 스피커 역할을 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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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치고

흔히, 입양은 상처이자 축복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시민권 미비로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린 필립 클레이의 자살로 불거진 “입양인 추방‘ 문제에 대한 대책촉구, 입양인 출신 프랑스 장관? 진짜 입양인의 세계는 잔혹하다는 다양한 이면을 그린 내용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8월 말, 총리께서 홀트아동 재단등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을 입양해 주는 해외기관에 대해 정기적으로 감사편지를 보내는 방안을 생각 해 보라는 뉴스로 온 입양 단체 가 함께 여기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답이 없다고...
김도현 원장은 입양 자체는 아름답고, 사랑을 깊이 실천한다는 차원에서 당연히 존경받아야 하지만, 먼 타국으로 떠나야 했던 입양인과, 품에서 자식을 키우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이제는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본래 가족과, 이들의 슬픈 여정을 치유 하는 일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도 말한다.
앞으로 HAN NETWORK에서는 다양한 각도로, 뿌리의 집 김도현원장과 함께, 이들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건강한 열매를 맺어서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또 키워준 나라에 감사를 표하는 열린 시각의 다양한 방송을 기획하고 있다.
앞으로 김 목사께서 이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도록 건강하시길 기도한다.


? 사진 동영상 : 多陽
? : 정하루 방송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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