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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시대 새도전 ‘캘리그래피.문자예술가’ 효봉 여태명교수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7-02-17 20:45 | 3,829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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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시대 새도전 ‘캘리그래피.문자예술가’
- 원광대학교 효봉 여태명교수


#1.

그는 2016년 9월 ‘새로운 시작 새로운 도전 여태명 병.신.육갑전 (丙申六甲展)을 열었다.
한 예술가의 인생이 집약된 전시회에서 그동안 書예술로 인연을 맺은 片묵회 회원 오십 여명의 제자와 함께 서예작품 외에도 도자기, 그림, 저서 등을 다양하게 소개했다.

#2.

삐뚤삐뚤하면서 그림 같은 글씨.
한글이 반포된 이후 서민들이 사용했던 서체라고 해서 ‘민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지금도 한국의 미를 어떻게 서예로 나타낼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고민이고 국보 제 70호인 훈민정음이 당연히 국보 제 1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의 이런 다양한 작품은 그림과 글씨의 조화를 넘어 그림이 글씨로 쓰이고 글씨가 그림을 그려지는 듯 예술미를 갖췄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인터뷰는 2월 말까지 그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YB엔터테이먼트 갤러리에서 진행되었다.




Q 요즘 어떤 일로 바쁘세요?

매주 광화문에 가서 서예 퍼포먼스를 하고 있어요.
내가 현장에서 쓰는 글씨를 보고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요.
그리고 어른 아이 한사람 한사람 자기 의견을 얘기하고 써낸 글씨 봐주고..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Q 환갑 개인전의 제목을 새시작 새도전으로 잡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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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환갑 이전의 삶은 어떠셨습니까?

어려서부터 그림, 글씨 쓰고 디자인하고 했는데..
그 시절 가난하고 고생스러웠지만 열정도 있었고 보람이 큽니다.
고서를 수집해서 우리말 연구를 하고, 민체를 공식적으로 알리고..
효봉개똥이체 축제체 등. 폰트를 개발하고 캘리그래피 전문인도 되고 제자를 길러내고...
그리고 올해가 정유년 닭띠쟎아요 그래서 닭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렇게 씩씩하고 유능한 후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Q 정말 그동안 참 많은 작업을 하셨쟎아요?

네. .60살까지...
한글 서예, 한문 서예, 전각이 좋아서 밤을 새운 적도 많았어요.
그러나 지금까지는 공부하는 자세였고 지금부터가 시작이에요.
제가 2014년에 캘리그래피 문자예술가 전문인으로 선정이 됐는데요.
요즘 문자예술이 확산되고 사랑받는 것에 정말 보람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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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새 시대 새도전 전시 이후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지금 이 작품이 그때 출품했던 작품인데요.
제목이 한국사람이예요.
그 당시 한국사람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좀 그려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고 막연히 알고 있었던 것 보다 훨씬 더 크고 깊게 절망하고 있는 거예요.
요즘 광화문에서 서예 퍼포먼스 하고 난 후 시민들을 만나요.
그들의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구나, 이런 아픔을 안고 있구나 싶고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 할 거예요,


Q 글씨와 그림을 통한 다양한 삶의 예술을 하는 이유는요?

나는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이 다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술 특히 서예 예술이 우리와 좀 멀어요. 그래서 일찍이 생활서예를 생각 했어요,
식탁보, 방석 넥타이 손수건 등등..
일단은 전시를 통해 작업을 했고...전시장의 유리를 깨고 나와서 우리와 함께 숨쉬는 예술 그야말로 생활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그 동안의 서예라는 기본 이미지를 깨고 민체를 만들게 된 계기는?

한문과 한글의 모든 서체를 다 공부하고 전각도 공부하고...
그런데 언제나 고민되는 것이 있었어요. 어제 쓴 것 오늘 쓰고 또 내일 또 쓰고 이게 항상 고민이었습니다.
예술가라면 오늘과 다른 내일은 뭔가 또 다른 것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1991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한중일 서예작가초대전에서 큐레이터의 얘기가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작가들은 왜 중국 글씨를 전시해요? 당신네 나라 글씨를 써보세요”

그리고 그때 보여준 내 한글 작품에 너무 큰 감탄을 하는거예요.
이를 계기로 고서도 수집하고 공부도 하고 그러다가 민체가 1991년에 세상에 소개가 됐죠.


Q 작가로서 느끼는 자부심이라면 ?

민체를 쓴다는 것..
추사선생도 사후에 추사체가 됐는데 나는 현재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알려지고,,,
그래서 지금 켈리그래피와 같이 이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고 쓰여 지고 있다는 것이 기뻐요. 또 서예를 전공하는 학생을 가르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Q 어떻게 한 작가가 그렇게 다양한 작품을 할수 있나?

저는 한 가지 머문다는 것이 답답해요.
저는 붉은 색을 좋아해요.
요즘은 빨강색을 좋아하지만 또 노랑색을 좋아 할수도 있고..
그리고 열정과 정렬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을 바탕으로 예술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할수 있지 않았나 싶고 그런 시도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이 열정을 품은 사랑으로 이 시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리고 또 나는 누구인가... 한국인으로서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어떻게 예술을 표현할 것인가 앞으로도 고민이 많아요.


Q 서예의 현주소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지금 대학의 많은 예술과가 없어지고 있어요.
우리대학 서예문화예술학과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앞으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켈리그래피를 좀더 활성화 시키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자유롭고 싶어요.
여태명은 서예가다, 화가다, 이런 걸 떠나서 예술인으로서 자유롭게 살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살았다 이런 사람으로 남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좀 더 놀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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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언제 봐도 개구쟁이 소년이다.
처음 만난 20대부터 환갑을 넘긴 오늘까지..
문득 그는 자기가 쓴 전주라는 현판을 지날 때 마다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전 국민이 매주 보는 TV 프로그램 1박2일. 그리고 고향 진안 백운을 갈 때마다 만나는 병원의 대형 간판. 인터넷방송국 한 네트워크의 로고..
또.. 그리고 그가 이뤄낸 수 십개의 타이틀과 곳곳에 소장된 작품들...
그러나 그는 참 소박하다.
십 수 년 전부터 해온 봉사를 통한 서예치료.. 병원에서 만남을 아주 소중히 생각한다.
처음 만난 환자에게 자기 이름을 쓰게 하고...
먹과 붓을 두려워하지만 잠시 후 정성을 다해서 마음을 정화하고 먹을 갈고 자기 이름을 쓰고 느끼는 위로와 평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꿈꾸고 소망하는 미래를 쓰는 것 ...
그러면서 치유되고 회복되는 몸과 마음을 보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그야말로 아직도 더 놀아 보고 싶고 사랑과 열정이 있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대가가 권유하는 이 치유법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그리고... 우리도 해야 하는 healing code가 아닐까?...
바로 이런 것이 그가 꿈꾸는 생활 예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사진 동영상 : 多陽
? 글 : 한여름 방송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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