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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관점에서 본 ‘전주, 도시이야기’ 장명수 전북대 명예총장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7-03-03 12:28 | 3,876 | 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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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관점에서 본 ‘전주, 도시이야기’
- 장명수 전북대 명예총장


#1.

젊은 시절 그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마농레스코를 지켜내지 못한 그리외의 애절한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그리고 심훈의 상록수가 인상적이어서, 그러나 어느 누구의 간섭도, 주문자의 요구도 없는 쾌적한 도시를 만들고 그 곳에 서있는 이야기가 있는 예술, 건축에 마음이 더 끌렸다.
그에게 60세는 성인식을 치르는 나이였었고 지금은 5대째 산 이 도시가 자랑스럽고 재미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하는 도시 문화 탐험대를 만들면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본 전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통사를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2.

유쾌, 상쾌, 통쾌,
그의 강의와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고 유익하다.
전주, 도시이야기는 우선 크게 6개 분야로 나누어 진행한다. 전주탄생과 호남문화의 중심지부터, 성곽도시, 장돌뱅이경제, 한식의 뿌리, 일본 식민도시화과정, 한류, 전류, 풍전세류이다. 올해는 6개 정도의 강의를 더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은 1937년 홍수가 난 뒤 둑을 만들고 집을 짓기 시작해서 1938년부터 형성됐으며, 수도인 “전주”에 살던 후백제의 유민은 다 어디로 갔나를 궁금해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는 백제에 관한 기록과 유적이 없어 너무나 안타깝다는 도시학 박사이다.
인터뷰는 그가 소장으로 있는 전주 도시 인문학 연구소에서 진행됐다.




Q 재능기부를 하신다구요?

저는 전주에서 5대째 사는 토박이예요.
자연스럽게 전주에 관한 관심 또 전공한 건축공학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전주에 접근하게 됐습니다.
도시는 인류 역사상 집이 출연하고 도시가 만들어지고 이 두 전문 영역 속에는 인류 문화사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 인문학의 관점에서 전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통사적 강의를 합니다.
아는 만큼 기쁘게 재능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Q 옛날 전주하고 많이 변했죠?

엄청나게 변했죠.
제가 어렸을 때 전주는 불과 5 ~ 6만명 정도의 인구였죠.
그러다가 지금은 65만이 됐어요.
변했다라는 표현보다 격변했다가 맞을 것 같아요.
도시 면적도 확장되고 인구도 많아지고, 건물이 높아지고 화려해지고.
그러다 보니까 화젯거리도 많고 뉴스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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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주, 도시이야기 강의하시면서 아쉬운 점은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록에 대한 아쉬움인데요,
문서 내지 그림 사진은 대체적으로 많아봐야 50년대 이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 조선시대까지 거슬려 올라가 100년 이상은 소급해야 통사적인 강의가 되는데 그때의 자료는 거의 없고 만들어 졌다 해도 소진됐어요.
그래서 아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또 이런 자료가 없기 때문에 전주 본연의 문화 원형을 찾기가 힘들고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Q 전주 문화재단 이사장 하실 때도 그랬고 자료 찾는 노력을 많이 하시쟎아요?

그래서 그동안 작은 기록과 작은 사진이라도 수집하는 일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많이 작고하셨지만 100년전의 이야기 퍼즐을 맞추려고 적어도 80세 이상의 90세 넘은 분에게 스토리텔링을 했고,
그 기억들을 기록하고 조각보처럼 이것저것 꿰맞추고 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Q 5대 토박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고 누구나 고향지킴이를 하는 건 아니쟎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소에 있다가 고향에 왔어요.
1963년 전북대학교에 건축과가 생기면서 왔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도시화가 된 다음에 온거죠. 초창기 강의 때는 건축학 원론에 가까운 것만 가지고 강의를 했는데 80년대에 들어서 아차 이러면 안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널리 자료도 구하고 사람도 구하고 해서 시작을 했어요.
그러나 정말 너무나 미진하고 안타깝고.
90년대 와서 최초로 쓴 책이 ‘성곽도시 발달사’였어요.
아마 이게 전주에 관한 전주학 최초의 전문적 학구적인 논문이고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부터 전주에 대한 연구가 전개 됐고 많은 자료들이 인용돼서 형성됐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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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도시인문학을 소개해 주세요?

우선 도시는 가로, 나무, 간판, 건물 이런 물리적인 것으로 채워져 있어요. 이런 모든 게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인문학적인 지식, 앎이 필요한거죠.
그릇을 도시라고 보면 되고 먹거리는 인문학 이라고 보면 됩니다.
도시인문학이라는 것은 한 그릇 속에 있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 되는데요. 그 동안에 너무 도시를 물리적인 것만 생각해 왔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너무 많은 것을 놓쳤고 흘려보냈고 지나왔던 거죠.
그래서 그 속에 있는 맛있는 역사와 더불어서 인문과 知를 하나 더 넣었어요. 철학, 종교, 미학. 그래서 전주 미학을 탄생시킨 거죠.
이게 바로 도시인문학입니다.


Q 그래서 전주학을 연구하시게 됐네요?

그렇습니다. 간단히 애기하면 서울학, 전주학, 전북학 이런 애기를 하죠.
그동안 전주학을 연구하다 보니까 너무나 일반 역사에 치우쳐 있고.
예를 들면 연대순에 따른 사회적 변화 즉 일반적인 역사가 너무 많이 되풀이 됐고 그래서 여기에 좀 입체적인 걸 입혀야겠다 생각했어요.
좀 더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도시학 즉 ,인문학이라는 하드와 소프트가 같이 하는 인문학적 도시학을 필요하다 생각했죠.


Q 전주학에 대해 좀더 하고 싶은 말씀은?

요 근래 안동문화권과 전주 문화권 교류를 하자 그 이야기가 행정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저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안동문화권과 전주 문화권은 완전히 이질적인 문화배경을 가지고 있어요.
안동은 유교 문화권인 양반문화권이고 우리는 판소리나 그림 등 정말 다른 전통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아직 연구가 충분치 않고,,그래서 이때 너무나 다른 안동문화와 같은 유교 문화권하고 남도문화권하고 지금 교류하려고 하는 것은 좀 성급한 문제다,
그래서 우리도 그쪽도 좀 충분히 공부가 된 다음 만나자는 생각을 저는 합니다.


Q 앞으로 이 전주학에 대한 어떤 연구를 더 하실 생각이세요?

우리가 자랑하는 판소리 문화가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됐고 어디다 내놔도 손색이 없습니다.
동리 신재효선생이 집대성한 결과인데요,
그러나 왜 판소리는 전주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나 이런 근원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 뿐만 아니라 전주의 기타 전통문화들도 왜 여기서만 꽃 폈나 앞으로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하겠나 이런 단계적인 연구 개발이 필요하고 이런 것들을 융합해서 확실한 전주전퉁문화는 이거다라는 걸 발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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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주사람으로서의 자부심과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라도는 천년전에 전주와 나주를 합한 것이고 경상도도 경주와 상주를 합한거예요. 그리고 충청도도 마찬가지구요.
사실 따지고 보면 권역이라는 것은 옛날 하천과 산맥으로 나눠져 있었고, 소통과 유통이 힘들 때 얘기에요.
그 당시는 자기 고장에서만 사는 것을 최고로 알았는데 이제는 그런 식으로 살면 안돼요. 전라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다 나중에 소통하고 교류하다 보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작은 것 만도 아니고 큰 것도 많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큰 것은 자랑하고 작은 것은 키우고 그런 작업이 젊은이와 언론과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1979년에 창간한 노령이라는 문화 잡지는 지금도 7-80년대 문화자료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은퇴 후 전주문화재단에 있을 때 지금은 작고하신 어른들의 옛 기억을 더듬어 내서 구술기록집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유응교, 김현숙교수 등등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제자도 많고..
1994년부터 2002년까지는 전북대, 우석대에서 총장으로써 학교경영에 참여했다,
참 제자를 길러내려고 노력했고, 교양과 문화를 키워주고 싶어 나무를 심고 예능교육에 힘썼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그를 木총장이라고 기억한다..
요즘 학생들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 상황으로 볼 때 위기감은 언제나 있었고 그래서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라고 그 답게 격려한다.
선지자 요엘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면 자녀들은 예언을 할 것이고 노인들은 꿈을 꿀 것이고 청년들은 환상을 볼 것이라고 했다.
아직도 너무나 할 일이 많아 고민이고 오늘도 써야할 원고가 있고 도시인문학을 연구해야 하고....

그는 묘비명에 이렇게 쓰이기를 바란다.
전주에서 태어나서, 전주를 사랑하고 재밌게 살다간 사람이었다고,,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지금 사는 이 도시에 작은 기록 하나는 남겨 둬야 하지 않을까?
미래의 또 다른 도시 인문학자를 위해...


? 사진 동영상 : 多陽
? : 한여름 방송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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