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허성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전주를 기록하다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7-05 18:13 | 167 | 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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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를 기록하다
- Jeonju Memoirs
- 记录 全州

나를 펼쳐보이다
- Exhibition Work : Unfolding Me
- 展开我

사진으로 이야기 하다
- Photo storytelling
- 通过照片讲故事

허성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1.

허성철작가는, 1994년부터 전주의 도시 성장 과정을 담은, ‘전주를 기록하다’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경희대학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하고 전북일보 사진기자와 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14번의 개인전과 해외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사진과 그림을 혼합해 자신을 이야기하는 ‘포토페인팅’ 작업과 1990년대 중반 이후 전주가 변해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1995년부터 최근까지 전주시의 변화과정을 사진에 담은 ‘전주를 기록하다’는 에코시티와 효천지구, 만성 법조타운 등 전주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앞으로 이 자료는 그 어느 누구도 담아 내지 못할 가치와 전주의 또 하나의 기록문화, 무형유산이 될 것이다.

#2.

칠실파려안
Chil-sil-pa-ryeo-an
play in it
칠실漆室은 옻칠을 한 캄캄한 방
파려坡黎는 유리,안眼은 눈으로


조선 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에서 오늘날 카메라 장치와 유사한 당시의 기계를 칠실파려안이라 명명한 바 있다.

허작가는 60세가 되던 해 ‘전주를 기록하다’ ‘ 나를 펼쳐 보이다’ ‘사진으로 이야기하다’의 3권의 카메라와 엮인 모든 결과물을 한자리에 모아 ‘칠실파려안, 그 안에서 놀다’ 라는 책을 내 놓으며 무조건 행복하다고 했다.




Q ‘전주를 기록’하다 작가가 된 계기는요?

전에 일했던 신문사 국장님이 “내가 전라북도 사진은 수십 년 찍었는데 퇴사하고 보니까 내 손에 남는 사진이 하나도 없어” 그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회사소속으로 전라북도를 수십 년 누볐던 분도 퇴사를 하니까 모든 자료를 회사소속으로 보내야 하니 그 분 말씀이 “너는 왠만하면 힘들겠지만 허기자 자신의 자료를 가져봐라” 그런 애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취재 나갈 일 있으면 회사용 카메라 별도로 내 카메라를 준비해서 같이 찍었죠.
그래서 퇴사하고도 회사자료는 다 넘겼지만 내 자료도 나름대로 갖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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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그 당시는 주로 어떤 사진을 많이 찍었나요?

본격적으로는 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직전부터이고, 그러나 1994년도 부터 밑 작업은 했고, 그 후에 정리를 하면서 보니까 전주가 세계적인 대회를 유치를 하면서 동서남북이 동시에 개발이 많이 됐더라구요.
나름대로 내 사진의 힘이라고 하면 세월의 터가 켜켜이 쌓였다는거죠.

90년대 중반부터 감나무골 재개발지역도 언론보도가 되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몰려서 사진 찍고 빠지지만 저는 개발 예정지, 전경으로 찍고, 골목길 다니면서 찍고, 집 허물면 허무는 것 찍고, 초기 기초공사할 때 찍고, 완공될 때 찍으니까, 세월의 흔적과 터울이 쌓이면서 그 세월의 힘은 아무도 따라오지를 못해요.

내가 태어나서 살고 있는 고향을 누군가는 묵묵히 기록이라는 단어가 아닌 일상적으로 숨 쉬는 것처럼 차곡차곡 사진을 찍어 담아 두는 것도 내 후배들에게 자료의 힘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올 봄에도 갤러리에서 초대 전시를 했지만 서부 신시가지나 효천 지구 등등..
아마 저보다 더 좋은 기록사진이 있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이 후에도 계속 시차를 두고 개발되면서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을 담으니까 그분들은 그 때만 사진 찍고 마침표를 찍으니까 세월의 힘 앞에는 제가 앞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Q 사진에 관한 나만의 시각이 있다면요?

일반적으로 사진하는 분들의 기본 생각은 사진은 집을 벗어나 아침 일찍 새벽에 가거나 몇박 몇일씩 머물러야만 좋은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 하는데 저는 일상 24시간 내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수시로 접할 수 있어야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첫 개인전 ‘우리가족–마이페밀리’에서는 큰 녀석 탯줄 물린 것을 시작으로 해서 7살 때 미장원에서 머리 브릿지 염색 하는 것까지의 성장과정을 죽 담은 사진으로 전시했는데 저는 이쁘고 좋은 것도 좋지만 내 생활의 일상을 자주보고 겪는 것을 찍고 기록하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주를 기록하다’를 영역화 하면서 ‘전주메모화’로 표현을 한 것은 기억 하고 기록하는 게 메모리인데, 메모화는 좀 더 넓은 뜻을 담고 있고, 특히 ‘전주를 기록하다’ 작업을 하면서 최근에는 ‘에코, 효천, 감나무, 기자촌’까지 기록하고 있으니까 이 모든 것이 다 가슴, 기록에 남는다는 거죠.


Q 다큐멘타리 사진작가로써 하고 싶은 이야기는요?

우리가 사는 사회도 결국은 생물이에요.
시멘트로 콘크리트로 세워지는 아파트단지 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땅을 밀어서 없던 아파트도 세우고, 있던 아파트가 재개발도 되고 재건축으로 항상 변화해요.

그래서 기록이 필요해요.
40년 가까이 카메라를 가지고 놀고 있지만 앞으로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건 사진 뿐이니 계속 이 작업은 할 것 같아요.

사진이 지금은 디지털이지만 전에는 필름이라는 원본이 있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은 사진은 무한반복 재생된다고 생각하고 “그것 좀 줘” 이런 말을 쉽게 해요.
작가들도. 거기에 들어가는 사진은 서브 개념으로 생각 하는 거예요.

저는 저의 정당한 가치를 돈으로 생각 해 본적은 없지만 이런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 된거예요.
필요하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가져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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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 방대한 자료는 지금 어떻게 보관하고 있나요?

제가 시작한 90년대만 해도 디지털 이전이고 신문사에서는 필름으로 쓰고 저는 슬라이드 필름을 썼거든요.

90년도 중반부터부터 지금까지 흑백필름으로 사진을 찍고는 있지만 상당히 많은 양이 슬라이드 필름으로 되어 있고 나는 좋아서 이 일을 했고 기록을 가지고 있고 내 머릿속에는 前後 메모리가 돼 있지만 내 손을 떠났을 때는 내 자식마저도 아빠가 한 일에 관심이 없으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스캐너를 사 가지고 2년 반 정도 스캔 작업을 해서 풀 데이터를 다 받아서 자료를 디지털화 해 놨죠.

다큐멘터리 사진은 정확한 데이터가 없으면 무의미해서 엑셀 파일로 연도순과 지명순으로 완벽하게 마치는데 2년 반 정도 걸렸죠.
그래서 지금은 효천지구 감나무골 키워드만 넣으면 사진을 찾아서 몇 번 파일에 뭐 있다 이런 식으로 쉽게 찾을 수가 있어요.


Q 그동안 쟝르별로 작업한 작품집이 묶여져 나왔네요?

2년전 나이 60살 정도면 한 바퀴를 도는 텀 환갑이 됐어요.
지금의 나는 많은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서 있구나 라는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에게 도움을 준 분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책을 123권을 찍었죠.

넘버링 해가면서 감사의 인사로 드리면서 ‘허성철 카메라로 놀다’ 이렇게 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 많은 자료를 찾다 보니까 다산 정약용 선생의 ‘칠실파려안’이 내 생각에 맞는 거예요.

그리고 그 안에서 놀다라고 하면서 그동안 작업했던 것을 목록화, 섹션 화 해서 작업 한 걸 한 권으로 모았죠.

90년도 중반 이후에 전주와 관련된 변화된 모습은 허성철이라는 친구를 통하면 어느 정도 필터링이 된다는 욕심을 좀 내 봤죠.


Q 사진 책에 담긴 내용을 좀 알아볼까요?

우리 큰 녀석 탯줄을 집게로 묶는 장면부터 시작한 가족 첫 전시부터 올해까지 해서 14번을 했는데 죽 작업 했던 것들을 ‘칠실파려안’ 한권으로 모아서 펼쳐 보였죠.

그리고 손녀가 작년에 첫돌이었는데 선물을 해주고 싶더라구요.
사진을 모아서 애기 이름이 은채인데 책자를 하나 만들어 줬죠.

그리고 제가 2014년도에 한지를 가지고 첫 전시회를 했는데 글 쓰는 사람들이 글을 통해 자기 속을 표현 해 내듯 나도 사진 카메라를 통해서 속내를 표현 하는 도구로 쓰고 싶은 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메라를 재현의 도구로 쓰고 있거든요.

재현이 아니라 창작의 도구로 쓰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출력하는 소재에 변화를 줘보자 해서 한지 작업을 했죠.

단순히 밖에 있는 풍경을 찍어서 평면적인 종이에 출력해 내는 게 아니라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을 찍는데 어떻게 찍을까 밖에서 일반 눈으로 보는 것은 마음에 드는 걸 찾을 수 없으니 내 마음을 그려서 사진을 찍고 그걸 포토샵 들어가서 섞고 빼고 하면서 한 장에 출력을 하고 포토페인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2014년도부터 전시를 꾸준히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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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 소개를 해주세요.

제가 전시를 올 봄까지 14번을 했는데 타이틀이 딱 2개예요.

하나는 ‘전주를 기록하다’ 1ㅡ2ㅡ3ㅡ4로 나가고. 또 하나는 ‘희망을 품다’ 저는 이 안에서 희망을 애기하고 싶었거든요.

한지를 찢어서 맨 끝에 결결이 올을 살리면서 칼라를 넣고 다른 종이에 사람 형태를 그려서 포토샵으로 빼서 한지로 찍은 사진에다 언치고 출력을 하느거예요.

붓 터치로 멋으로 깊은 산을 그려서 프린트된 한지를 물을 묻혀서 공 만들듯이 구겨서 다시 피니까 울틍불퉁한 요철이 생긴 것이 내가 나타내고자 했던 힘 있는 산이 표현이 됐는데 좋았어요.

또 하나는 농도를 달리하는 산에다 털실 같은 굵은 실로 입체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봄에 올라오는 대나무 잎을 찍어서 얹기도 하고...
제가 제목을 ‘희망을 품다’라고 하는 이유는 항상 힘겹게 나와 타인의 삶이 싸움인데 한 발자국이라도 헤치고 나가는 게 우리의 삶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초록은 일반적으로 희망을 애기 하니까 초록을 통해 희망을 표현하고 싶은거죠.
사진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한지를 이용했고 포토페인팅이라는 이름을 걸고 이렇게 작업을 하는데 결국에는 사진에서 발을 뺏을 뿐 결국은 회화라는 개념에서 몸을 담는게 아닌가 하는 딜레마에 빠지기는 해요.

그러나 예술이라는 게 지금은 쟝르 개념이 없고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에 방점이 있다는 생각에 저는 내 속내를 잘 끄집어 생각하고 만족해요.


Q 대학 강의와 독일 전시회도 하셨죠?

학생들에게 자주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가마 안의 온도가 1300도 정도의 고온 가열을 해 주면 진흙으로 형태가 만들어 지는데 그렇게 구워지면 영원 불변하다고 해요.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났어도 가마 안에 들어가지 않고 진흙으로 건조된 것은 물속에다 다시 넣으면 어떤 형태로든지 바뀔 수 있다고 해요.

사진은 원 데이터만 있으면 시간이 지나서 보니 이때는 이거로 만족했는데 다시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면 그 원재료가 데이터에 있으니 가변이 항상 가능 하다는 걸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럽은 동양문화 특히 한지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고 좋아해요.
독일 전시회때 제가 출품했던 작품 중에서 반응이 좋았던 작품을 대형으로 출품해 주기를 바라는데 작업한계도 있고 일단은 외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Q 40년 사진작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올 봄에 ‘칠실파려안’ 전시를 끝내고 스스로 개인전은 그만둔다고 저에게 약속을 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여놓은 판도 있고 주변에 회자되는 이야기로 있고 해서 초대전 형식으로 전시회를 2번인가 더 했는데 이제는 힘들고 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주도 한 없이 커지고 전주만 가지고도 내 영역을 벗어난다는 생각도 들지만 계속 끌고 갈 것 같아요.

요즘에는 젊은 친구들이 모든 자기의 활동 영역을 경제개념과 매치를 시키는데 물론 그게 당연하죠.
그리고 ‘예술은 가난해야 한다’ 이런 건 잘못 된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지역과 내 주변을 묵묵히 담아 내는건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책무, 내가 여기에 발 딛고 사는 사람으로 의무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작업할 거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게 저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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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현재 살아 숨 쉬고 있는 이 곳과 그 안에서의 경험 그리고 가족을 중요하게 여긴다”

I value this place where I live and breathe, the experience that happens in it, and my family
我珍惜我生活和呼吸的这个地方,珍惜在这里发生的经历,珍惜我的家人

내 사진의 근본은 '독특함 uniqueness'다.
모든 사진에 나만의 색, 나만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예술은 힘이 한곳에 모이며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서도 '다름'을 찾았고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 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희망 shooting hope'이다.
많은 사람이 좌절하고 스러지지만 그럼에도 그 역경을 딛고
앞으로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이라 생각했다.
'희망을 품고 shooting hope'
제작방법 면에서 보면
카메라가 찍은 것 외에
붓으로 그리고 그것을 다시 직어 포토샵 작업을 통해
내 이야기를 그리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사진과 그림을 합쳐 만들었다해서 '포토페인팅
Photopainting'이라 불렀다.
내 작품 속 사람, 새는 작가 자신이면서 감상자들이 해석하는
'그 무엇'이 되기도 하다.

​ 가끔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색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카메라 눈으로 렌즈가 읽는 색을 볼 수 있다.
그 눈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해왔으며 앞으로도 내 이야기를 할 것이다.
- 허성철 작가노트 中에서

​ 나는 카메라를‘표현의 도구'가 아닌'창작의 도구'로 이용하고자 했다.

- I tried to use the camera as a 'tool of creation' rather than a 'tool of expression’
-我尝试将相机用作“创作工具”而不是“表达工具”



사진 동영상__유기승
글__정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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