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은퇴 후에 다시 시작한 인생 이모작. 에스와티니에서 의학물리학 김병호교수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3-20 16:14 | 2,430 | 0

본문

interview_Kimbho.jpg

은퇴 후에 다시 시작한
인생 이모작
에스와티니에서 의학물리학 교수로

김병호교수
Eswatini Christian University


#1.

남태평양 섬나라 쿡제도와 필리핀이 ‘새 이름 찾기’에 나섰다.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지역 고유말로 바꿔서 나라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이다.
아프리카의 스와질랜드는 지난해 4월 ‘에스와티니 왕국’으로 국명을 바꿨다. 이유는 ‘스와질랜드’가 유럽의 스위스와 헷갈리기도 쉽고, 영국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났는데 영어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새 이름 ‘에스와티니’는 스와지어로 ‘스와지족의 땅‘을 의미 한다.

#2.

6년 전 군산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를 은퇴한 김병호 교수는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1-2년 뒤에 갑자기 아프리카에 있는 신설대학에서 물리학 분야 교수 초빙을 받고, 망설이다 아내가 가보자고 해서 망설이다 가게 됐는데, 그 나라가 너무나 아름답고, 공기도 좋고, 아내도 약학과를 진학해서 젊은이들과 아주 잘 어울려서 은퇴 후 삶의 만족도가 아주 높아졌다고 했다.

평생 취미인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다치는 바람에 한국에서 몇 번의 수술을 한 뒤 지금은 그 나라의 의료 시설 열악함에 귀국을 고민하고 있다.





Q 에스와티니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우리나라 전라남북도 합친 크기 정도 소국인데 왕국이죠.
지금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원래 영국식민지였고 1968년도에 독립을 했어요.
식민지에서 독립을 한 그 해 태어난 아들이 현재 왕을 하고 있어서 지금 나이가 지난해 50세가 됐어요.
50세 생일잔치를 아주 거창하게 했어요.

아프리카 어떤 나라를 가든 세계적인 평준화가 됐다고 봐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황량하고 말 그대로 창 들고 다니고 그게 아니고 여기나 똑 같아요.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한 것 없고, 우리 사는 거나 비슷합니다.

주식은 옥수수 가루로 죽을 되게 끓여서 밥처럼 먹죠.
반찬은 주로 고기를 많이 먹어요. 목축을 많이 하니까..
그러나 우리가 생활에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 음식재료 등은 한국 마트나 큰 차이가 없어요.


interview_Kimbho01.jpg


Q 그럼 교수님 사시는 곳은 어디예요?

에스와티니 수도 움바바네, 대학이 바로 움바바네 옆에 시내권에 있어요.

산업화가 전혀 안 돼 있고 농업이 주업이라고 봐야하죠.
옥수수 정도만 심어서 먹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요.
도시 사람들은 생활수준이 높고, 일반적으로 산업화가 안 돼 있기 때문에 직업들이 굉장히 적어요.
주로 공무원 군인 경찰 선생 은행원 이런 기본적인 직업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2014년 7월에 갔는데 나이든 입장에서는 있기가 좋아요.
조용하고 공해가 거의 없고. 저 같은 경우는 대학에 가서 학생들 강의만 하면 하고 싶은 것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지내기가 편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와서 있기에는 답답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Q 학교 소개를 좀 해주세요.

학교 이름은 ‘에스와티니 크리스챤 유니버스티’ 선교사가 학교를 설립 하게 된 동기는 그 나라에 의과대학이 없어요.

정부의 허락을 받고 의과대학을 처음에 개설을 했는데, 의사들이 있어야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교수를 확보하지 못해서, 학생을 뽑지 못하고 있어요.
다만 보건계열, 간호학과, 방사선과 임상병리과 약학과 거기에 IT학과, 심리학과, 사회복지학과 이런 정도의 과가 있고, 의과대학은 아마 금년 여름부터 가능 할 것 같아요.
의과대학에서, 의학물리하고 수리계통 수학이나 통계학을 가르치는 조건으로 갔는데 아직 의과대학 개설이 안돼서 허가는 났지만..
의사 분들이 많이 지원을 해줘야 가능해요.

현재는 보건계열 방사선과, 약학과, 전산과, 수리계열 수학이나 물리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Q 주로 외국 교수들이 많겠네요?

현재 있는 분들 중에 핀란드나 영국에서 와 있는 교수들이 2-3분 있고, 기타 아프리카 인근에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와서 가르치고 있죠.

그 나라 단점이 수학하고 과학계통이 약해요.
아프리카 사람들이 굉장히 어려워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맡은 분야는 상당히 교수진을 뽑기가 힘든 상황이죠.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 나라 언어 스와질랜드 언어가 있는데 주 공용어는 영어예요.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기나라 말로도 공부하지만 영어를 주로 많이 써서 영어가 잘 통하고 강의도 하죠.


interview_Kimbho02.jpg


Q 고향은 어디세요?

군산 개복동이고, 군산대학은 1982년도에 왔어요.
일찍부터 가서 있었으면 고향 생각이 날 법한데 정년퇴직하고 간 상태라서..
단지 시간이 흐르다 보니까 여기서 사는게 더 재미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국에는 방학 때면 와요.
교민이 최근에 조금 늘기는 했는데 제가 처음 갔을 때는 20여분, 그리고 지금은 30-40명 되요.
그런데 그 중에 절반은 선교 활동으로 오신 분들이고 원불교에서 초등학교도 만들어서 봉사하는 분들도 있고,

자녀들까지 하면 40명 정도.. 추석이나 설 때 모여서 같이 식사를 하죠.



Q 학교 생활 이야기를 해 주세요.

처음에 갔을 때는 일주일에 20시간 이상을 했어요.
약학과 방사선과 간호학과 임상병리 전산과 그 학과에서 필요로 하는 교양과목이라고 할까요?
가르칠 사람이 없죠.
학과장들이 와서 부탁하면 거절도 못하고, 그래서 처음에는 24시간 까지 했어요. 일주일에..
그러다 너무 피곤해 하니까, 조교 하나를 붙였고, 수학, 물리, 통계학을 테스트를 해보니까 잘 해요.
그래서 조교한테 수업을 절반 떠 넘겼죠.

정식 강사로 채용을 해서 나눠서 하고 있어요.
운동도 하고, 곤충 조사도 하고, 야생화도 채집하고..
제가 패러글라이딩을 좀 해요. 그걸 하다가 사고가 나서 다쳤어요.
건강만 허락하면 오래 있어도 굉장히 좋은 곳이에요.


Q 그 나라 소득 수준은 어때요?

소득 수준은 우리나라하고 비교하기는 어려워요.
왜냐면 기본적으로 직업이 다양하지 못해서.. 부유한 사람들은 사실 소수죠.

도시지역에 가장 많은 직업은 경비, 대개 가정집 중산층 이상은 경비를 전부 씁니다.
집집마다 경비를 2-3명씩 쓰기 때문에, 교대하는 시감이 되면 경비들의 행렬이 만들어 져요.
경비 아니면 가정부가 주 직업이고 일반서민들은 한달에 우리 돈으로 하면 많아야 15만원 정도 생활이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데 중산층 이상은 소득이 높아요.
저희가 사는 집이 현재 국왕의 형인 왕자 집에 한쪽 세를 얻어 살고 있고, 경비 등은 다 도와 주고, 가정 내 생활은 직접 해결을 해요.


interview_Kimbho03.jpg


Q 전문 직종을 은퇴한 분들에게 해외 일자리를 권유하고 싶으세요?

가서 그런 쪽으로 기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의 분야 사람들이 없다 보니까 그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쉽게 가게 됐는데 문화적인 차이도 있고 좀 어려울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은 좀 고려를 하셔야 해요.
사람들은 똑 같아요.
어울려보면 생각하고 행동거지도 거의 같고 차이점이 없어요.
학생들도 우리나라 학생들하고 행동 생각 다 똑 같아요.
구별을 못하겠어요.
아프리카 대학인지 한국대학에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인지 구분이 잘 안되요.
여건이 조성 되면 가서 한번 이런 일을 해보시는 것도 권해 드립니다.


Q 군산을 어떻게 소개 하세요?

외국에 나가면 당연히 애국자가 되죠.
자연스럽게 다들 모여서 대화를 하거나 식사를 할 때 더 친밀감이 생기고 교민들끼리는 돕고 상당히 끈끈하게 서로 뭉칩니다.
알게 모르게 애국심 이런 게 작용해서 그런 것 같아요.

한국인이라는 걸 강조하고, 고향을 물어 보면 군산이라는 지역을 애기를 하게 되고, 여기는 항구다 등등 당연히 자랑스러운 얘기를 하죠.


*** 인터뷰를 마치고

김병호교수는 에스와티니에서 한국 문화 알림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군산도 알리고, 지난해 수교 50주년 행사에서 한국의 예술인들이 전통음악과 태권도 시범을 보인 이후 그 나라 사람들이 문화 충격을 일으켰다고 했다.
태권도 가르쳐 달라고도 하고, 한국 음악도 관심 있어 하고..
북 장구를 대사관에서 지원을 해 줘서 보여 주기도 하면서..

그의 정년 후 아프리카에서의 다양한 삶은 평생 물리학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틈틈이 해온 취미와 봉사가 그의 후반기 인생을 더 풍요롭고 빛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이모작 인생에서 망설이는 그에게 당당하게 한 번 가보자고 권유한 아내가 없었다면 도저히 맛 볼 수 없는 영원한 미지의 세계 였을 것이다.

김병호 교수께 아프리카 에스와티니에서 부를 노래 하나를 추천한다.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내 생애 최고의 선물 당신과 만남 이었어
영원한 동반자여
당신은 나의 동반자....


부부가 아프리카에서 건강하고 더 행복 하실 길 빕니다.


? 사진 동영상 : 多陽
? : 김세영 방송디자이너



Categories

Search

Recent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