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아나운서 이종태입니다.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9 11:32 | 1,130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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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전주 대구 포항 찍고 After visiting Daejeon &Jeonju and stopping by Daegu &Pohang
아나운서 이종태입니다. annoucer Jong-tae Lee
혹시! 전국노래자랑 후임 MC? The next MC of the national singing contest program?

이종태 공주학연구원 시민연구원

#1.

한때는 국회의원도 헸지만 평생 따뜻하고 편안한 방송을 했던 이계진 아나운서는

“메모하는 좋은 습관이 좋은 책을 만들었고 38년 동안 KBS 전국구 아나운서로 겪은 직장인의 비애와 어려움을
풍자와 해학으로 소곤소곤 속삭이듯이 풀어가는 이야기 솜씨가 대단하다”며

이종태 아나운서를 개그맨을 웃기는 아나운서라고 칭한다.

#2.

‘아나운서 이종태입니다’ ‘어리비기’

2021년 2권의 책을 쓴, 이종태 아나운서는
1970년 KBS 아나운서 합격 후 KBS 남원방송국 아나운서를 거쳐 대전, 부산, 공주, 전주, 대구, 대전 방송국에 근무했다.

한글학회에서 우리 한글지킴이로 위촉됐고, 2008년 KBS 정년퇴직 후 대전 우송대-중국 남경 효장대 한국어연수원장, 대전우송대 한국어연수원 초빙교수, 국제교류문화원 이사장 등을 지냈고 지금은 제 2의 고향 공주에서 문화 활동가로 공주학연구원으로 아주 바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Q 본인 소개를 해 주세요.

1993년도에 전주 아나운서 부장으로 근무했고 전주에 오랜만에 왔습니다.
2년간 근무하고 전주에 정이 푹 들어서 늘 이곳이 그리웠어요.
그런데 이번에 제가 책을 하나 내서 전에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과 전주에 있는 지인 몇 분 모셔서 감사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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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방송국 은퇴 이후 삶을 더 보람 있게 사는 것 같은데요?

95년에 전주를 떠나서 대전 공주 대전 대구 대구 포항 울릉도 까지 갔어요.
2008년도에 정년퇴직을 했는데 KBS 38년 근무 동안에 14번 발령을 받아서 다녔어요.
2008년도 3월에 정년을 하고 남경에 있는 남경 효장대학하고 대전에 있는 우송대학하고 자매결연을 맺어서 졸업을 하면 양쪽에서 졸업장을 주는데 중국유학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다가 그 이듬 해 귀국을 해서 대전 우송대학에서 8년간 외국 유학생들한테 한국어를 가르쳤죠.

현직은 떠났지만 한국어를 열심히 가르치면서 살았어요. 재미있었습니다.


Q 전국구 아나운서셨네요?

 

키가 작고 못생겨서 그런지 전국을 돌리더라구요.
보통 다른 아나운서들은 한 2-3번이면 끝나는데 저는 13번 14번 돌아 다녔잖아요.
그래도 재미있었던 것이 분위기가 늘 바뀌고 적응해야 하고 친해야 하고,

긴장해야 하고, 칭찬 받기도 하고 핀잔 받기도 하면서 38년간을 근무했죠.

한국 아나운서 클럽이 주는 대상 1호를 받았는데, 기라성 같은 아나운서들이 얼마나 많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전국 아나운서 대회를 하면서 사회를 많이 봤어요.
체육대회하면 응원단장 했고..
두루두루 알고, 인기가 있으니까 인기상으로 준 것 같아요.



Q 처음 부임지가 전라북도였고 여러 가지 인연이 많으시잖아요?

70년에 문화공보부에서 KBS 아나운서 공개 채용을 했는데 합격을 했어요.
남원 방송국에 정식 초임 발령이 났는데 이 도령이 남원에 가서 춘향이를 만나서 결혼을 했죠.

1993년 전주에 왔는데 유휴열 화백이 점심을 먹으러 가재요.
현대옥 아주머니가 콩나물 국밥을 만드는데 한사람 한사람에게 인터뷰를 해서 식성을 맞춰 주더라구요.
그 사람의 식성을 기억했다가 다음에 가면 꼭 그렇게 맞춰주는데 이 집 대박 비결이 이거구나 했죠.
먼저 온 사람 먼저 주고 식성 데로 말아주고..
양옥련 아주머니 지금은 80이 넘으셨죠.

또 하나 이야기 대전에서 봉동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이정기 주유소가 있어요.
실명 주유소에요.

카우보이 모자에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손님들 주유를 하면서 기름이 묻을까봐 수건을 받쳐서 정성스레 넣어주고

매주 선물도 따로 따로 준비해요.

“지난주에 오셨군요” “2주만에 오셨군요”

전국에 이정기 주유소 실명 소개를 했는데 그 분에게 방송 끝나고 전화가 왔어요.
“고맙습니다 제가 전국 스타가 됐어요. 현대 정주영 회장님께 전화가 왔는데 다음 주 서울에서 

전국 주유소 소장 회의가 있는데 특강 좀 하라고 하네요..
저 스타 됐어요 감사합니다”

근데 난 너무 PR 했다고 시말서 냈어요. 경고 처분 받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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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21년에 책을 내셨는데요. 이번 책이 처음 입니까?

2003년도에 프랑스 가족 여행기 ‘가족이 아름답다’와 3년 후에 제주도 갔다 온 ‘제주도 가족여행기’가 있고

‘어리비기’는 지난 3월 20일 고향에 갔더니 70-80된 고향 선배들이 옛날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재미 있는 거예요.

그래서 고향이야기를 썼어요. 어리비기가 고향 뒷산 아름이예요.

뒷부분에 KBS에서 방송했던 12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썼더니, 이계진 아나운서하고 박종권 선배가 KBS 38년인데 

더 쓰라고 해서 48가지 이야기를 썼어요.

‘아나운서 이종태입니다’ 에는 93년부터 95년까지 전라북도 얘기가 많아요.
‘남문시장 현대옥’, ‘이정기 주유소’, ‘순창 동계면의 요강바위 이야기’, ‘서해 훼리오 침몰 이야기’ 등등 이런 저런 전국에 있었던 얘기를 썼어요.



Q 중국에서 돌아와서 정말 본격적인 은퇴이후의 삶이 시작 됐는데요?

남경에서 와서 대전 우송대학에서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대전에서 흥사단 대표를 맡아서

적극적으로 일했고, 국제교류문화원 이사장을 맡아서 국제교육을 하게 됐고, 

공주로 이사를 가면서 공주 사람들하고 살아야겠다 싶어서 ‘공주 고도 육성아카데미’에 다녔죠.
공주를 역사적인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공주를 공부했는데 제가 1기로 수료했죠.

또 공주대학교에 문화유산대학원에서 정책을 전공했고, 지금은 공주대학교 공주학 연구원에서 시민연구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배우고 공부하고 정 붙이고 살아요.



Q ‘아나운서 이종태 입니다 ’의 하이라이트라면?

48가지가 있는데 다 재미있어요. 어느 것 하나 뺄 수 없고..
전국노래자랑은 제가 전주방송국에 있을 떄 94년 추석에 부산에서 전국노래자랑과 전국천하 장사씨름대회를

나흘 동안 진행자 송해선생님 대신해서 진행을 했어요.
담당 PD가 “수고하셨습니다. 프로그램이 개편되면 정식으로 사회를 보시면 좋겠습니다” 했는데 

후에 담당 PD에게 전화가 왔어요.

“송해 선생님이 다시 MC 하신답니다”

그 분이 올해 94세 되셨잖아요. 하나님께 여쭤 봤어요.
“언제 돌아가십니까? 안 돌아 가신데 ”
“하나님 송해 선생님은 한국의 문화재가 돼야 합니다. 또 기네스북에 올라야 합니다. 아멘!”

KBS 발령 받기 전에 뽀빠이 하고 더블 사회를 봤는데 사회자보다는 KBS아나운서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이별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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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풀꽃 시인 나태주 선생과 인연이 깊으신 것 같은데요?

제가 ‘어리비기’를 쓰면서 풀꽃 시가 들어가면 좋겠다 싶어서 나태주 시인에게 말씀을 드렸죠.

“고향 이야기 한 꼭지마다 선생님 시를 좀 쓰면 좋겠습니다” 했더니
“아! 그렇게 하세요” 그래서 나태주 선생님 시를 29편 실었어요.

그러니까 이종태와 나태주 공저가 됐고 많은 분들이 아나운서 얘기를 본격적으로 쓰면 좋겠다고 했더니

나태주 시인께서

“그게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아나운서 이종태입니다”로 확실하게 가세요. 축하 글도 써주셨어요.
‘영원한 KBS맨 이종태’

나태주 선생님은 현직에 계실 때 친했죠.
시나 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하고 2014년도에 공주풀꽃문학관이 개관하면서 제 1회 풀꽃 문학상 시상식 

할 때 사회를 보고 늘 같이 있게 되고 문화원장 하시면서 교류하게 되고 그래서 친하게 지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크고 거창한 계획은 없어요.
그날그날 열심히 살다보면 이렇게 저렇게 일이 생기고...

이 책을 쓰고 나서 나태주 시인께서

“당신 앞으로 계속 책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문장이 참 재미있고, 따옴표가 많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책은 그냥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독자들이 식상하는데
선생은 따옴표로 대화체로 쓰니까 얘기하기 쉽고, 듣기 쉽고 재미있어요.”

집 사람 권유를 해요.

“앞으로 계속 쓰세요 뭐 생각날 때 마다 쓰세요”

아! 그래 나도 쓰면 될까?
이번에 책을 내고 난 다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출판 기념회를 하면서 그 애기를 넣으면 좋겠다 싶어서

계속 메모를 해요.
그렇게 해서 정리가 되면 또 새로운 책을 하나 쓸까 생각해요.



*** 인터뷰를 마치고

아나운서는 행복한 직업입니다.
삶과 축제의 현장에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성공한 사람을 만납니다.
지도자와 엘리트를 만납니다.

‘아나운서 이종태입니다’

그렇게 화려하고 좋은 직업일 수만은 없는데 대단히 감사하고 재미있는 직업 이라고 예찬론을 펼친다.

밝은 이면에는 그림자가 짙은 법 그런데도 이종태 아나운서는 전국구를 돌면서 지역사람들과 가까이 만나

좋은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오히려 은퇴 후에 더 많은 역동적으로 지역사회 봉사하면서 유쾌하게 지내고 있다.

현대 정주영 회장 살아 계심 분명 특별강의 연락이 올 텐데..

많이 아쉽다.

앞으로 송해 선생의 대를 잇는 ‘KBS 전국노래자랑’ 준비된 MC가 되길 기대한다.



사진 동영상__유기승
글__정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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