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쟁가리 교회 서무일 목사
본문
내가 어디에서 일하면 좋을까?
- Where should I work?
- 我??在?里工作?
우간다의 바나바
- Barnabas in Uganda
- ?干?的巴拿巴
일상 나눔이 선교
- Everyday's sharing is the mission
- 每天的分享就是使命
서무일 목사
우간다 쟁가리 교회 목사
#1.
주님을 닮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 앞에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소박한 꿈이지만 저의 마음속에 주님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하시고
주신 직분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믿음을 닮고 싶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닮고 싶습니다.
주님의 마음과 믿음 그리고 삶과 능력이 내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주님을 사랑하는 스코필드-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들어온 수의학박사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의 기도문이다.
그는 3.1운동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의 독립을 도왔던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고 있고,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다.
#2.
I am leaving you with a gift: peace of mind and heart.
And the peace I give is a gift the world cannot give
-Jn 14:27-
“하나님은 우간다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나에게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행복을 서로가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서 이게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있으면 같이 먹고 없으면 같이 굶겠습니다.
우간다에 있는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사명이고 이 아이들이 다시 쓰임 받게 하는 게 저의 일입니다”
-Barnabas in Uganda-서무일 목사
Q 본인 소개를 해 주세요.
우간다에 10년째 살고 있습니다.
제가 목사잖어요. 원래 선교를 꽤 오랫동안 준비를 했어요.
어느 곳을 가느냐가 문제였는데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인도 하셨어요.
아프리카를 많이 다니면서 내가 어디에서 일하면 좋을까? 여행을 했는데 우간다를 가 보니 ‘아! 이곳이 좋겠다’ 생각했죠.
2010년도에 처음 우간다에 갔는데 어느 형제를 만나요.
운명처럼 7살 형과 4살 정도의 아우, 형이 동생을 돌보면서 가는 걸 봤는데 그게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았어요.
내가 선교를 가면 이 친구들이 있는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교회의 여러 사역을 하다 목사가 됐고 본격적으로 2000년도부터 일을 시작 했어요.
Q 처음부터 해외 선교를 꿈꾸셨나요?
사회에서 많은 일을 하다 교회에 들어왔고, 한국에 있을 때도 무료경로식당, 교인들 아픈 분들 간병 프로그램,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일을 하다 해외 선교를 준비 했죠.
사실 목사라는 직업이 뭔가 좀 심오하고 좀 전문적이잖아요?
저는 제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내가 뭔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찾았죠. 몸으로 도울 수 있는 일들..
2013년도에 선교를 하려고 우간다에 갔는데 도움의 손길도 필요하고 후원금도 필요하고 지내야 할 여러 제반 조건들이 있잖아요.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고.
저는 시골에 갔어요. 우간다 수도에서 8시간 떨어진 곳인데 그 곳에 가서도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으니까 우간다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집을 짓고 들어 건거죠.
그곳에서 사니까 생활비도 좀 절감되고 오히려 그게 장점이 된거죠.
현지 사람들하고 가깝게 되고 그들과 이해관계도 깊어지고...
Q 우간다 선교 계기가 됐던 아이들은 만났나요?
그렇죠. 그 마을에 갔으니까, 선교를 준비할 때 어떤 일을 할 건가에 대한 고민을 하잖아요.
선교사들이 보통 교회를 짖고 교인들을 모으고 교회를 키우고 이런 일을 하는데 저는 처음에 그럴 여력도 없었고, 일단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어 부족 했지만 아이들을 모아서 아이들과 노는 일을 시작했죠.
2명의 아이들을 모아서 옥수수죽을 끓여서 같이 나누어서 먹고 교회학교처럼 아이들과 노래하고 놀고..
한국에서 청소년들 파트에서도 일 했고 어린아이 파트에서 일을 해 봤기 때문에 기본은 있는 거죠.
한국에는 많이 프로그램들이 있거든요. 교사대학,, 교사 강습회..
그런 것 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거죠.
Q 지금은 규모도 커지고 많은 일을 하시는데요?
2013년도에 가서 그 해 말에 움막을 짓고 현지에서 그 친구들과 같이 살기 시작 했는데 한 2-3년 지난 후에 우연히 우간다에 오신 선교팀을 만나게 되요.
그 분들의 가이드 역할을 했는데 그 때부터 연결이 되기 시작했어요.
그 교회 목사님이 뭔가 도와 줬다고 하시고.. 아이들이 있으니까 유치원을 하고 싶다고 해서 유치원을 시작하고 운영이 되면서 그 아이들과 결연도 되고, 그러다 보니 커지게 되고... 일단 학교나 유치원이 운영이 되니까 뭔가 보이잖아요.
아 저 선교사가 이런 일을 하는구나. 그 때부터 관심을 얻게 시작 했죠.
또 선교사들에게는 선교편지라는 게 있는데 제가 이런 일들을 하고 있어요.
하면서 저희를 후원해 주는 교회에게 보고를 하죠.
그러면서 서로가 하고 싶은 일들을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일들을 나눠요.
Q 주민들과의 건강한 관계도 필요하겠네요?
한국교회에서 보고 돕는 분들이 생겨요.
이 곳에 우물이 너무 필요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물을 뜨러 2km 걸어 가야 합니다.
그 곳에 가도 동물들과 같이 물을 나눠 먹어야 하고..
그런 걸 소게 하죠. 그러면 한국 교회에서 도움의 손길이 오고 이러면서 시작이 되는 거죠.
처음 유치원을 시작 할 때 가장 큰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구요.
같이 병행해서 교회를 했기 때문에 청년들이 커서 목회자 훈련을 받는 친구들도 있고 제 주위에서 저를 많이 돕고 있죠.
제가 있는 지역이 우리 표현으로 말하면 오지마을 이예요. 20년 동안 내전이 있는 중심지역이고 2008년도에 내전이 종식되었다고는 하는데 데미지가 계속 있는 지역이고 우리가 생각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지역이거든요.
그런 곳에 제대로 된 교회가 세워지고 사실 페인트 칠한 건물은 제가 지은 건물이 처음 이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볼 때는 대단하게 보이는 거죠.
Q 우간다에서는 이름이 바나바라구요?
처음에 선교훈련 1년을 탄자니아에서 받았는데 그 곳에 가면 한국 이름을 현지인들이 부르기 어려우니까 많은 선교사들이 영어 이름을 지어요.
성경을 토대로 이름을 짓는데 여러 가지 이름이 있죠.
어떤 선교사님이 바나바로 하면 어떻게냐?
왜냐면 바나바가 ‘위로하는 사람’이고 ‘돕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교하면서 이름을 잊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돕는 선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 선배 선교사님이 지어 주셨어요.
너무 제 마음에 들고 이름값하고 사느라고 애쓰고 있습니다.
Q 현지 어린이들과 체험학습도 많이 하시던데요.
저희가 있는 곳이 평지지만 외부와 단절 돼 있고 도시가 가깝지만 한번도 못 간 아이들이 대부분 이예요.
우리는 어렸을때 1년에 한번 씩 소풍을 갔던 기억들이 있잖아요.
유년 시절에 이 아이들은 그런 게 없어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할까 하다가 ‘비젼트립’을 생각했어요.
우리도 이 아이들에게 꿈을 꾸게 하자 우리가 있는 곳에서 40km 떨어진 한 시간 반 정도의 도시가 있는데 가는 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리고.. 아직도 아이들이 그곳을 못 가본 거예요.
왜냐면 하루 종일 노동을 해도 거기에 갈 수 있는 차비가 안 되니까...
편도 차비가 안되요.
아이들과 함께 경찰서도 처음 가보고 우체국에도 처음 가보고 관공서 투어를 하는데 아이들이 슈퍼마켓에 너무 관심을 같더라구요.
두번째 소풍을 갈 때부터 슈퍼마켓을 구경하러 갔어요.
아이들이 어디보다도 흥미로워 하고 너무 행복해 하는 거예요.
슈퍼마켓에 많은 물건들이 있다는 것에 놀랬고 처음 보는 물건들이 많거든요.
껌이나 사탕은 가끔 나눠 주지만 슈퍼마켓에는 없는 물건이 없잖아요.
소풍 갔다 와서 몇칠 씩 동네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는 걸 듣고 있으면 정말 저들에게 비젼을 심어 주고 행복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해마다 하고 있죠.
Q 지금 까지 해 온 사역을 한번 점검해 보고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목사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복음을 듣고 결과적으로는 행복해지고 구원의 획신을 갖게 하려고 하지만 우리 눈으로 볼 때는 교회부분과 교회 밖의 부분이 나뉘어져 있거든요.
이제까지 저는 교회 밖의 부분을 중점적으로 일을 했어요.
실질적으로 생활에 도움을 주거나 의료지원을 하거나 했다면 이제는 그들과 다음 단계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공동체를 만들고 영향력을 다른 사람에게 끼칠 수 있는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게 제2기 목표에요.
지금 그런 일들을 하고 있고 저랑 같이 훈련 받은 목회자들이 생겼어요.
한 40여명 교육 했는데 지금 저랑 같이 일하는 친구들은 15명 내외 그래서 매달 교회들을 방문하고 교회 없는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제가 이제까지 10년동안 해 왔던 일들을 기본 시스템으로 해서 교회를 성장 시키는 일들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Q 앞으로 장기 계획은 어떻게 세우셨나요?
선교사가 어느 순간에 그 곳에서 사역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거나 그 곳에서 어떤 일을 해도 그 일들이 이어져야 하거든요.
저도 이제 50대 초반이지만 앞으로 사역할 수 있는 시간 동안 혹시라도 제가 떠난 후 일들이 잘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다가 떠나 간 자리는 더 공허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런 사역지들을 좀 봤어요.
저는 현지인 중심으로 이 친구들이 저 없이도 당신들 끼리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저의 계획이고 목표입니다.
사실 저는 아주 작은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선교사님들이 꽤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시거든요.
제 3세계가 다 그런 것 같아요.
지침서나 가이드라인도 없지만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큼 준비하고 계획하고 도우면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 인터뷰를 마치고
주님
내가 주님을 닮게 하소서.
주님의 삶이 내 삶이 되게 하소서
Oh Lord
Make me like my Lord
Let Lord's life be my life
我的上帝
?我像我的上帝
?上帝的生活成?我的生活
‘우간다의 위로자’ 서무일 바나바 선교사는 오늘도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줄 수 없는 평안을 우간다에서 준다고 약속하셨지만 머나 먼 아프리카에서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초월해서 남의 나라 땅에 뿌리를 내리는 일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기는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게 하는 일은 더 더욱 어려움이 있을거고 학교를 세우고, 선교원을 개원하고,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그들에게 다가가더라도 선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Mission Possible
사람들은 복음을 듣기보다 보고 싶어 한다.
한국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했던 스코필드 선교사와 같이 우간다의 위로자 ‘서무일 바나바 선교사’에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한다.
사진 동영상__유기승
글__정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