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수 도시아카데미?-히스토리아-선교의료학을 싣습니다
약령시하면 약을 파는데 법령에 의해서 시장을 만들어서 약령시입니다
관에서 만든 약재 시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부근 일대를 약전거리라고 해요
완산동으로 들어가는 골목을 약령골목이라고 해요 지명이 약간 남아있어요
관에서 설정한 약을 파는 시장입니다
옛날에 감영이 있고 산악을 등진 지역에서만 가능했어요
효종때 약령시를 왕령으로 만들었는데 전주, 대구, 원주 였습니다
전주와 같이 지리산이 가까운곳 강원도는 태백산 대구는 장백산에서 약재를 구하려고 했어요
그럼 왜 효종때 약령시를 만들었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륙의 영향 중국의 영향이 커서 문화를 위시 모든 문물을 중국에서 받아들였죠?
당나라 당자를 써서 한약재도 받아 들였기 떄문에 당제 한약재였습니다
우리나라의 한약재는 생산할 줄도 모르고 갖다 쓸줄도 모르고 당나라에서 온건만 가장 우수한 약재로 봤던겁니다
병자호란 이후에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꿨어요
그 후에 청나라에 대해 생소하고 명나라 숭배 때문에 청나라를 멀리 한거죠
한약재가 못 들어 왔던거죠
결국은 향재 이 부근에서 나는 한약재를 쓰기 위해 대군 원주 대구에다 약령시를 만든게 역사적인 기록으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