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야화_醫窓夜話


醫窓夜話30- 한의양의 의 협진 협치가 의료관광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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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窓夜話 의창야화

장명수 도시아카데미?-히스토리아-선교의료학을 싣습니다


1923년에 박계주라는 사람이 약령시를 할려고 했냐면

본인이 한약방을 하면서 어떤 약은 정읍에 가서 사고 순창으로 가야 하고 돌아댜녀야 수집을 할수 있단 말예요 

한 군데에서 살려면 약령시를 열어야 한다 본인이 한약방을 하고 있기 떄문에 바로 약령시를 하게 됐고


1923년은 예수병원과 도립병원이 성업을 할때입니다 즉 양의학이 효과가 많고 모든 사람이 양의를 향해 가고 있을 때입니다

신비스럽고 몇 대를 거쳐서 한약방들이 많기 떄문에 뭔가 한약의 효력과 효율성을 높혀야 겠다는 생각에 약령시가 만들어 졌다고 보여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지금은 희박해 졌을지  모르지만 양의학은 산뜻하고 한의학은 심오하고 오묘한 것으로 여겨지기 떄문에 지금도 보약 한 약을 먹지 비타민만 먹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약령시는 1943년에 끝나거예요 20년 밖에 못햇어요

1941 2차대전이 일어났고 전쟁중에 상 행위가 안 될뿐만 아니라 보약을 먹을 수도 없고 1943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전주의 약령시가 맨 처음 시작했다 40-50년만에 끝나고 1895년에 한번 부활하려다 실패하고 말고 1923년에 시작해서 한 20년하고 만 겁니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보면 아주 짧은 기간 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령시라는 아주 환상적인 시장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여러 사람에게 회자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한약에 대한 관심이 아주 강합니다

정식 양의사 학교 외에도 한약을 배우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들이 졸업하면 면허를 가지고 간단한 치료내지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 미국에 상당히 많거든요

요 근래도 양의와 한의의 협진 서로 치료를 하는 협치가 놔왔습니다


전주가 선교의료가 강했고 의료도시였다면 지금이라도 한의양의 의 협진 협치 에 관한 새로운 기획이 되고 실제로 옮겨지면서 의료관광으로 연장되고 활용될 것을 바랍니다


김완주시장떄 다가동에서 약령시를 축제같이 해보자고 해서 기획을 했어요

땅값이 들먹거리고 결국 약령시 부활을 할 수가 없었어요 약령시 축제 비슷한걸 한두번 하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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