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 원장님을 만난 것이 저한테는 기적 같습니다. 2010년 컴백한 후로도 손가락이 아파 힘이 들었는데 그걸 원장님이 감쪽같이 고쳤으니까요. 그게 언제였나 싶게 지금은 깨끗이 나아 신기할 따름이에요.
김상수 -저한테도 사실 기적 같습니다. 제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의학 공부를 했는데 그때 음반가게에서 정경화라는 한국 바이올리니스트의 레코드가 창가 가장 좋은 자리에 진열되어 있는 걸 보고 외국에 나와있던 한국 청년으로서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런 분이 몇 년 전 제 앞에 직접 나타나셔서 얼마나 놀랐는지요. 어떻게 저를 알고 찾아오셨는지 항상 궁금했어요.
정경화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수술 외에는 답이 없겠구나 싶었을 때 어느 의사 선생님이 한번 만나보라 추천해 주셨지요.
김상수 -처음엔 발이 문제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정경화 -그때 사실 발도 문제가 있었어요. 걸을 때 엄지발가락이 어찌나 아픈지 커튼콜을 받아 무대와 백스테이지를 왔다 갔다 하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였지요. 본 프로그램 끝나자마자 그냥 무대에서 신발 벗고 당장 앙코르곡을 시작하면 어떨까 궁리할 정도였어요. 그러나 당시 저의 또 하나의 숨은 뜻은, 아무리 실력이 좋은 의사분이라 하더라도 연주를 하는 제 왼손을 바로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맡겨도 좋을지 살펴볼 시간이 필요했어요(하하)
김상수 -제가 오디션을 통과했군요!
정경화 (웃음)- 발 수술 결과가 너무 만족스러웠고 원장님의 실력과 섬세한 의술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다음에는 중간단계로 엄지손가락 쪽을 수술했는데 그 역시 아무 문제없이 해결되는 것을 보고, 중요한 약지도 과감하게 믿고 맡기자 마음을 먹었지요. 결과는 대성공이었고요. 그게 벌써 2년 전의 일이군요. 그 후로 바흐 무반주에 브람스 협주곡에 케빈과의 듀오 리코딩까지.. 2년이 아니라 한 20년은 지낸 것 같이 아마득합니다. 원장님이 그때 참 대범하게 제 손을 맡아주셨어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상수 -수술은 수십 년 동안 쉼 없이 해왔던 일이고 그중에서도 미세수술은 뭐랄까요 제 적성에 참 맞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몇 시간이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수술을 하는 것은 타고난 성미가 특별하게 맞지 않으면 안 되지요. 저야 평생 길러온 기술로 응당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이고 그로 인해 정경화 선생 같은 출중한 음악가가 계속해서 아름다운 음악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오히려 수술을 권유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시 결정을 한 것이 더 대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정경화 (웃음) -이번 기회에 원장님이 하시는 의술의 전문분야가 어느 쪽인지 구체적으로 한번 소개해 주시지요.
김상수 -저는 평생 상완신경총이라 불리는 목 부근의 신경 미세수술에 전념해 왔습니다. 분만마비로 태어나자마자 팔을 못 쓰게 된 신생아 수술도 하고, 흉곽출구증후군이라는 분야에서는 이름이 조금 나있습니다(웃음). 이 병 때문에 팔에 마비가 와서 악기를 중단했던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를 고친 적도 있었는데 그분들의 재기 무대에 갔을 때 아주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부상당한 스포츠 선수들을 고치는 일도 그렇고, 의술이란 게 참 보람이 큰 직업입니다. 최근에는 중풍(뇌졸중) 환자의 마비 증상을 완화시키는 수술에 집중하고 있고요.
정경화- 중풍 환자도 수술로 좋아질 수가 있는 것입니까.
김상수- 수술 환자의 수도 점차 늘어나고 경과도 상당히 좋습니다.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인해 10년 20년 한쪽을 전혀 못 쓰다가 수술 후 재활 기간을 거쳐 손가락도 움직이게 되고 핸드폰도 조작하고 걸음걸이 같은 것도 좋아지는 걸 보면 얼마나 흐뭇한지 모릅니다. 완벽하게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만 일상생활에는 큰 도움이 되지요.
정경화 -이렇게 뵈면 원장님은 항상 의술 얘기, 저는 늘 음악 얘기네요(웃음). 원장님도 저도 그것밖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와 손가락 걸고 했던 약속 기억하시지요. 할 수 있는 데까지 우리 각자의 분야를 파고들어 세상에 보탬이 되어보자 했던... 저 역시 연주가 되었든 교육이 되었든 다른 무엇이든 간에 제가 사랑하는 음악의 그 신비한 매력과 깊이를 힘닿는 데까지 추구하면서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김상수 -퇴 후의 여유도 의미가 있겠지만 평생 가꿔온 기술로 누군가를 돕는 일은 인간으로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보람을 느끼게 해줍니다. 저도 후학 양성과 연구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생각입니다.
정경화 앞으로도 많은 분들께 도움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