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말 한류미래전략연구포럼은 한류의 경제 효과가 5조 6,170억 원(2011년), 한류의 자산가치가 94조 7,900억 원(2012년 6월)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약 95조 원인 한류의 자산 가치는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의 자산 가치인 177조 원의 절반이 넘고, 현대차(51조 원)와 포스코(32조 원)를 합친 것보다 11조 원 이상 높다. 특히 이는 지난해 7월 <강남스타일>이 나오기 전 계산이라 '싸이 효과'까지 반영하면 2012년 한류 경제 효과는 12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2013년 1월 2일자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문화적 상상력이 밥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 말이다. 문화를 경제적 가치로만 따진다고 마땅치 않게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중국 언론이 1997년 처음 '한류(韓流)'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약 15년에 걸친 한류의 성장이 경이적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한류는 대중문화 종사자뿐만 아니라 학자들도 바쁘게 만들었다. 2009년까지 총 250여 편의 학술 논문이 발표될 정도로 학자들은 한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한류를 둘러싸고 지난 10여 년간 이루어진 토론과 논쟁은 꽤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크게 보자면 거시적 시각, 중시적 시각, 미시적 시각 등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간 나온 모든 주장과 분석을 종합하면, 한류를 만든 요인을 10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근대화 중간 단계의 이점이다. 세계 체제 차원의 거시적인 분석과 평가를 시도한 백원담은 "한류란 우리가 식민지, 분단, 파행적 자본의 세월을 견뎌 주변부에서 반주변부로 가까스로 수직이동, 중심부의 배제와 착취의 논리를 피눈물로 익히며 자본의 세계화라는 각축 속에서 겨우 따낸 상가입주권, 세계문화시장이라는 쇼핑몰에 어렵사리 연 작은 점포, 혹은 방금 찍은 명함 한 장과 다름없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백원담은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일본에서의 한류는 세련된 향수(노스탤지어)의 소비다. 홍콩과 대만을 제외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의 한류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선험(先驗)이다. 개발도상국에 있어서 한국과 한류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요원한 미래가 아니라 손에 잡힐 듯 다가갈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희망으로 부유한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한류는 문화적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일본 사회라는 폐쇄회로 속에서 뒤돌아보고 싶은 과거의 재현 욕망을 충족하는 기제다."
상당 부분 동의할 수 있지만, 세계 체제에서 한국과 같은 위치에 처한 나라들이 모두 대중문화 수출에 성공한 건 아니므로, 이런 거시적 시각은 한국 내부의 다른 점도 살펴보는 중시·미시적 시각에 의해 보완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인의 잠재된 거시 문화적 역량이다. 시인 김지하는 한류는 "결코 일회적인 것도 아니고 '이제 엔간히 해둬야 한다'는 따위 비판을 가할 수 있는 들뜬 유행도 아닌 것"이라며 "한반도가 사상과 문화에서 참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 제가 류승범 주연의 <주먹이 운다>를 보면서 다섯 번이나 울었습니다. 한이 많은 우리 민족이 흥을 발휘할 때 그것이 한류를 일으킨다고 봐요. 인간 깊숙이 자리한 한을 흥으로 끌어올려 눈물을 나게 하는 우리의 문화적 역량, 바로 이 점이 한류로서 일본의 시민사회에게 호소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 봐요."
이어령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타난 것처럼 우리 민족은 '가무에 능하다'는 점입니다. 남을 억압해 죽이거나 돈을 빼앗아 부자가 되는 민족이 아니라, 춤을 춰서 남을 기쁘게 하는 민족입니다. 노는 데는 확실히 끼가 있는 것이 우리 민족입니다. 이런 신과 흥,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활용해야죠"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가가 정책으로 나서야 천재적 상상력을 문화와 예술 쪽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일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도 사회가 흡수해야 문화를 일굴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베짱이, 저 사람은 개미라고 나누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개미와 베짱이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죠. 한류라는 블루오션을 만들어낸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베짱이와 개미가 합쳐진 '개짱이'의 정신입니다. 당연히 이런 개짱이들을 한류 문명이 흡수해야죠."
『한류의 비밀』이란 책은 한류의 주요한 성공 원인을 무엇으로 꼽든 간에 한류에 대해 한마디씩 던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 좀 다르잖아요"라는 말을 은연중에 꺼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이 예기치 못한 성공에는 우리도 미처 몰랐던 한국인 특유의 기질, 이른바 '한류 DNA'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말을 모아보면 이야기를 좋아하고, 남의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며, 빨리빨리를 외치는 성질 급한 한국인의 민족성이 소프트 산업이 화두로 떠오른 21세기에 단점 아닌 장점으로 통했다는 것이다."
셋째, 한국인의 감정 발산 기질이다. 한·중·일은 비슷한 문화에 속한 것 같지만, 감정 발산에선 크게 다르다. 장례식장에서 대성통곡하는 문화는 한국이 유일하다.
정해승은 "놀기를 즐기는 것으로만 친다면야, 남미나 남부 유럽 등 우리보다 몇 배 선수인 나라들도 많다"며 이렇게 말한다. "외국인, 특히 서양 사람들은 절규하듯 땅을 치며 통곡하는 모습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 혹자는 그 이유를 한국인 특유의 '한(恨)' 문화에서 찾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필자는 그것을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발산하는 한국인 특유의 기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의 노래방 문화는 '발산의 문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런 발산의 문화가 대중문화 발전에 유리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정희진은 "감정(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 나가는 것(moving out of oneself) 즉, 여행이다"라며 "근대의 발명품인 이성(理性)이 정적이고 따라서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대화'가 때론 거칠고 시끄럽기도 하지만, 대중문화라는 마당을 통해 표출될 때에는 뛰어난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게 아닐까?
넷째, 키치의 제국으로서의 혼성화 또는 융합 능력이다. 한류의 성공은 키치의 제국의 빛과 그늘 중 빛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류는 문화의 혼성화(cultural hybridity)가 성공한 대표적 사례라고 하는 점에서 말이다. 류웅재가 잘 지적했듯이, "한류는 온전히 한국적인 콘텐츠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며, 지역과 수용자의 취향에 맞게 글로벌하고 동시에 지역적인, 즉 글로컬(glocal)한 요소를 배합하고 뒤섞은 이종교배(hybridization),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짬뽕 혹은 가든 샐러드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2011년 <나는 가수다>의 포맷이 미국에 100만 달러에 팔리는 등 한국의 방송 포맷 수출이 점점 늘고 있다. 이와 관련, MBC 예능 PD 권석은 이렇게 말한다. "후생가외(後生可畏)랄까. 이제 우리도 포맷 수출국이 됐다. 우리가 숨어서 베끼기에 바빴던 방송 선진국 미국과 일본이 우리 것을 사서 프로그램을 만든다. 포맷은 단순히 프로그램의 형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가치관이 녹아 있다." 이게 바로 혼성화 또는 융합 능력의 힘이다.
다섯째, 내부 시장의 한계로 인한 해외 진출 욕구다. 신현준은 한류의 태동이 1997년 말에 한국을 강타한 이른바 IMF 환란 직후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제 위기로 구조적 침체에 빠진 한국 음악 산업은 디지털화와 아시아화라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한류를 생존의 자구책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특히 음악 시장은 'IMF 환란'에 이어 디지털화로 인해 고사 위기에 빠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드라마 등 다른 대중문화 장르도 한국 시장의 협소함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다는 판단, 그리고 한국 경제의 높은 해외 의존도로 인해 여전히 한국인을 사로잡고 있는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 하는 멘털리티도 한류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여섯째, 한국인의 강한 성취 욕구다. 김현미는 한류 현상을 아시아 지역의 '욕망의
동시성'이란 개념으로 분석했다.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의 질적인 우수성이나 문화적 고유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기보다는 급격한 산업자본주의적 발전을 겪은 아시아 사회 내부의 다양한 갈등들─성별 정체성이나 세대 간 의사소통의 불능성 등─을 가장 세속적인 자본주의적 물적 욕망으로 포장해내는 한국 대중문화의 능력 덕분에 생긴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가장 세속적인 자본주의적 물적 욕망'은 결코 아름답지는 아니지만, 한국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생각한다면 결코 흉볼 것은 아니다. 많은 한국인이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삶의 철학으로 생존 경쟁에 임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는데, 『경향신문』은 그런 사고는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원동력으로 조명할 필요도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처럼 잘살고 잘 먹겠다는 의지만큼 강력한 성취 동기는 없다. 여기에는 개인이나 기업이 따로 없다. 누구나 출세하기 위해,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권력을 쥐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목적 지상주의가 후유증을 남기기도 했지만 무엇이든 달성하고자 하는 욕구가 삶의 질을 급신장시킨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선진국 진입을 바라보게 된 배경에는 '너도 하면 나도 하겠다'는 평등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일곱째, 강한 성취 욕구로 인한 치열한 경쟁이다. 학부모와 자녀가 동시에 참전하는 입시 전쟁이 잘 보여주듯, 치열한 경쟁은 대중의 일상적 삶까지 장악했다. 그러니 대중문화 분야의 경쟁 역시 치열했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동연은 "공중파의 막강한 자본 능력이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고, SBS의 개국 이후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져 한국 드라마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사실 한류 이전 한국 신문들은 수시로 지상파 독과점의 문제와 과도한 오락 중심주의를 지적하면서 드라마 망국론을 제기하곤 했는데, 한류는 오히려 그 덕을 보았던 셈이다. 대중가요를 비롯한 다른 대중문화 장르들도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늘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곤 했지만, 바로 그런 경쟁이 한국 대중문화의 수준을 높여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여덟째, 인적 자원의 우수성이다. 한류 기업가와 연예인 모두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선 사람들임을 잊어선 안 된다. 타고난 우수성도 있다. 외국 한류 팬들이 한결같이 감탄하며 지적하는 건 한국 연예인들의 뛰어난 외모 자본이다.
『매일경제』와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2012년 2월 세계 9개국(중국, 일본, 대만, 태국, 미국, 영국, 브라질, 러시아, 프랑스) 3,6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한류의 인기 비결을 묻는 질문에 '매력적인 외모'라고 답한 응답자가 2,03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새롭고 독특하다'(2,029명), '우수한 품질'(1,691명), '뛰어난 퍼포먼스'(1,661명), '세련되고 고급스럽다'(1,545명) 순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한국인의 외모가 뛰어나다는 설도 제기되었다. SM엔터테인먼트 대표 김경욱은 "베이징과 도쿄보다 서울 거리에서 잘생긴 사람을 발견하기가 더 쉽다"고 했고, 일본 문화 전문가 김지룡도 "일본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꼭 한국계라는 소문이 돈다. 실제 한국계인 스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재일동포들이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외모가 상대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
아홉째, 군사주의적 스파르타 훈련이다. 군사주의는 일방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여기서 군사주의는 기존의 부정적 의미를 탈피해 '목표 달성을 강력한 일극 리더십 체제에서 군사작전식으로 일사불란하게 달성하는 걸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이념'이라는 가치중립적 개념으로 쓰고자 한다. 앞서 보았듯이,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스파르타 훈련은 다른 나라에선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도가 세다. 인권 문제가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그 모델은 태릉선수촌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는 적어도 금메달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암묵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열째, IT 강국의 시너지 효과다. 김상배는 한류의 성공은 "문화와 IT가 복합된 CT(culture technolgy: 문화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보유한 지식 역량이 바탕이 됐다"고 본다. 그는 한류를 디지털 현상으로 이해해야 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를 소비자 측면의 변화에서 찾으면서 "실제로 한류 열풍의 이면에는 인터넷상에서 동아시아 신세대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는 디지털 문화 콘텐츠의 교류가 있고, 이를 매개로 한 지식의 공개와 공유 관념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한류의 성공 요인을 바로 한국이 선두에 선 온라인 게임 등 사이버 문화가 막 생성기에 접어든 동아시아 청소년 디지털 코드와 맞아떨어졌다는 데서 찾은 것이다.
연예 매니지먼트 기획사들이 홍보를 위해 공격적으로 IT 기술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SM엔터테인먼트를 필두로 하여 기획사들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최대한 활용하여 해외 팬을 창출하고 관리하는 데에 공격적일 정도로 적극적인 면모를 보였다. 2011년 유튜브는 음악 카테고리에 케이팝을 추가했는데, 이 카테고리에 특정 국가의 음악이 자리 잡은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폐쇄적인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에서도 소녀시대의 화려한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케이팝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산 미국 빌보드가 2011년 8월부터 케이팝 차트를 만들었다. 아시아 국가의 음악이 빌보드에서 별도 차트로 만들어진 것은 일본에 이은 두 번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