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준 의사 문인 열전

[의학신문·일간보사]

바빈스키는 1896년 프랑스 생물학회에서 병적 발바닥 반사를 밝힌 연구 발가락의 현상(phenom?ne des orteils)’을 발표했다발바닥 반사로 생리적 현상과 피질척수로 손상의 징후를 구별해낸 역사적 발견바빈스키 징후의 탄생이었다이는 신경 병리학 이해의 돌파구를 만들었고동시에 신경병리학의 수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병리학적으로 알게 된 질병 징후를 스물여섯 줄로 적확하게 묘사 기술해낸 바빈스키의 신경 기호학에 관한 깊은 이해의 성공이었다.

조셉 바빈스키(Joseph Jules Fran?ois F?lix Babinski, 1857~1932)의 부모는 폴란드에서 차르의 공포 통치를 피해 프랑스로 이주하여 그를 낳았다바빈스키는 파리 의과대학에서 위대한 신경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이며 신경증의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샤르코의 제자로서 탁월한 의학 교육과 수련을 받았다당시 프랑스 의학계에 만연하던 임명과 승진의 음모와 정치에 거리를 두고파리 피티에(Piti?) 병원에서 신경학 연구에 전념했다대학교수 자리를 차지한 적도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바도 없었지만훌륭한 의과대학에서 공부한 뛰어난 임상의로서 신경 질환에 관한 이백 편 이상의 논문을 저술했다히스테리와 기질적 질병의 감별 진단을 최초로 제시하였고일부 히스테리 증상은 암시에 의해 생성되므로 암시에 의해 제거될 수 있다는 이론에 기초하여, 1918년 피티아티즘(pithiatism)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피티아티즘은 설득력이란 뜻을 지닌 고대 그리스어에서 따온 말이다또한 다발성 경화증의 병리를 연구한 최초의 신경과 의사 중 한 사람이 되었다아울러 안톤-바빈스키 증후군바빈스키-프뢸리히 증후군 등의 다중 신경 증후군을 설명하는 데 근본적 공헌을 했다.

 

바빈스키(53세경)와 바빈스키 징후(위: 정상, 아래: 바빈스키 징후)(Ben Pansky 그림)  (출처: 퍼블릭도메인)바빈스키(53세경)와 바빈스키 징후(위: 정상, 아래: 바빈스키 징후)(Ben Pansky 그림) (출처: 퍼블릭도메인)

 

바빈스키가 희곡 작가였다는 사실은 그의 사후 이십사 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올라프(Olaf)라는 필명으로배우이며 극작가인 팔라우(Pierre L?on Palau)와 함께 미친 여자들(Les D?traquees)을 공동 집필했다. 미친 여자들은 베르사유의 한 사립 기숙 여학교 연말 파티에서 일어난 학생 실종 사건을 다루고 있다조사 결과둘 다 레즈비언인 수석 교사와 무용 교사가 자신들의 변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소녀를 유혹고문강간살해했음이 밝혀진다연극은 1921년 2월 15일 토요일프랑스 파리의 두 개의 마스크 극장(Theatre des Deux Masques)’에서 초연되었다공연은 충격적 소재와 내용 자체로 전례 없는 사회적 풍파를 일으키며 이백칠십팔 회 연속 공연을 이어갔고공연 내내 객석은 만석이었다.

올라프가 바빈스키라는 걸 세상에 알린 사람은 바빈스키의 조수였던 앙드레 브르통이었다연극을 관람했던 브르통은 주연 배우에게 마음을 빼앗겼고가장 위대한 연극 관람 경험 중 하나였다고 할 정도로 깊게 감동하였다브르통은 자신의 책 나쟈(Nadja)의 한 챕터를 할애하여 그 감동을 적었고그 후 자신의 평론잡지 초현실주의 그 자체》 첫 호에 올라프가 바빈스키임을 밝혔다.

바빈스키가 희곡을 쓰게 된 동기는 세 가지라 여긴다가장 큰 원동력은 희곡 창작을 향한 자신의 열정이었다그리고 이 열정을 돋워 구체화한 자극은 스승 샤르코의 관점이었다샤르코는 히스테리 환자를 상징적인 사진으로 이미지화하는 등 자신의 히스테리 연구가 순수 예술에 적용될 수 있음을 깨닫고 실행하고 있었다스승의 관점이 지핀 제자의 희곡 창작열이 작품이 되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엔 19세기 당시의 히스테리에 관한 사회문화적 인식도 한몫했다병태 원인 등이 거의 밝혀지지 않은 히스테리는 사회의 작지 않은 이슈였고문학계에선 히스테리를 시()적 요소가 다분한 소재로 간주하기도 했다정신분석학자들은 ‘19세기는 히스테리의 시대라고 부를 정도였다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스승의 영향을 받은 바빈스키는 여성의 지옥이라고까지 불리던 히스테리의 숨 막히는 연극성을 곧 발견하고문학적 열정으로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녹여 내었다.

바빈스키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남동생과 함께 살며 친한 친구의 세 딸을 입양했다. 1932신경기호학의 천재이며 희곡 작가 바빈스키는 파킨슨병으로 일흔다섯 해삶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