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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 영웅들의 나라 칼레발라 - 엘리아스 뢴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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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의 나라 칼레발라 - 엘리아스 뢴루트


엘리아스 뢴루트(왼쪽), 시 수집에 나선 뢴루트(오른쪽)
엘리아스 뢴루트(왼쪽), 시 수집에 나선 뢴루트(오른쪽)

[의학신문·일간보사]'영웅들의 나라'라는 뜻의 '칼레발라'는 핀란드 의사이면서 언어학자이고 시인이며 시 수집가인 엘리아스 뢴루트(Elias Lnnrot, 1802~1884)가 채록 집대성한 핀란드 민족 대서사시의 제목이다.

뢴루트는 재단사의 넷째로 핀란드 남부 도시 삼마티(Sammatti)에서 태어났다. 정규교육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책에 대한 열망과 후원자의 도움 덕분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대학 지망생들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힘든 일을 하곤 했다. 뢴루트도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재단사 일을 한 적도 있다. 주변의 후원으로 열여덟 살에 고급 문법학교에 입학했으나, 몇 주 후에 학교를 그만두고 내륙 도시인 해민린나(Hmeenlinna)로 가서 수습 약사가 되었다.

사교육으로 대학 입학에 필요한 공부를 마치고, 스무 살에 당시 핀란드의 유일한 대학이었던 투르쿠 아카데미(Turku Academy)에 입학하여 의학을 배웠다. 대학이 투르쿠에서 헬싱키로 이전한 후에도 의학 공부를 계속했다. 서른 살에 《마법에 기초한 핀란드 치유법을 다룬 논문》으로 졸업했다. 당시 헬싱키엔 수련 병원이 없어 인턴쉽을 하지 않고 보조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졸업 일 년 전에 헬싱키에서 콜레라가 유행했을 때 이미 임상 의사로서의 실제 경험을 쌓았었다.

#healthchosun_img_pot_2# 엘리아스 뢴루트(왼쪽), 시 수집에 나선 뢴루트(오른쪽)

졸업 다음해, 핀란드 동부에 위치한 카야니(Kajaani) 지역으로 갔다. 기아와 역병이 닥치자 앞서 근무하던 의사가 서둘러 사임하는 바람에 지역 의사 자리가 비었기 때문이었다. 몇 년 연속 농작물 수확을 못 해 인구와 가축이 줄어들었다. 심지어 그곳엔 다른 병원이 없어 사천 명 정도의 주민에 의사는 뢴루트 단 한 사람뿐이었다. 의료비와 약값이 비싸 대부분의 사람은 마을 치료사와 민간치료법에 의존했다. 의료 환경에 맞추어 뢴루트 자신도 더러 전통 치료법을 적용하였다. 이처럼 남다른 현지 적응력을 발휘하여 이십 년 동안 카야니에서 진료에 진력을 다하면서, 사미(Sami), 에스토니아, 러시아 서북부의 핀란드 부족 마을 등을 여행하면서 민요시뿐 아니라 우랄어 계통인 핀우고르어(Finno-Ugric)의 발틱어 갈래들의 관계에 대한 증거들을 수집하였다.

수집을 위해 수개월씩 십여 차례에 걸쳐 핀란드 곳곳을 다녔다. 뢴루트는 수집한 짧은 시들이 전체가 남아있지 않은 연속 서사시의 일부라고 믿고, 짧게 흩어진 시들을 자신의 모국어로 한 땀 한 땀 잇고 엮어 단일 플롯으로 일체화했다. 드디어 1835년에 『칼레발라』 초판본을 냈다. 그 후 계속 자료를 수집하여 1849년에 재간본을 출판했다. 『칼레발라』는 천지창조와 예언자, 대장장이, 협객 등 세 사람이 여왕의 딸에게 구혼하러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칼레발라』는 미국 시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의 시 율격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예로서, 롱펠로우의 시 「하이어워사의 노래(Song of Hiawatha)」는 전설적 인디언 추장 하이어워사의 이야기를 『칼레발라』의 4보격(步格) 운율에 맞추어 쓴 장시로서 그 당시 널리 읽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인기를 누렸다.

뢴루트는 헬싱키 대학의 핀란드어문학 교수로 재임하며, 현대 핀란드 문학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십사 년간의 작업을 거쳐 이십만 개 이상의 올림말을 실은 최초의 핀란드어-스웨덴어 사전을 편찬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당시에 더 많이 쓰이고 있던 스웨덴어 대신에 핀란드어가 국가 언어로 인정받게 하였다.

핀란드의 국가 의식, 예술 및 문화에 끼친 「칼레발라」의 영향은 엄청나다. 『칼레발라』는 국제 무역 및 문화 교류의 촉진자로서 국가적 자부심을 강화하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핀란드는 2월 28일을 '칼레발라의 날'로 제정하여 매년 기념하고 있다. 뢴루트는 언어와 정치의 경계를 초월하여 민족을 하나로 묶는 권위를 지닌 위인이었다. 혁신적 박식가(博識家)였다.


의학신문 의학신문 기자 medicalnews@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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