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사랑에 빠진 사람, 또는 사랑에 관해 쓰는 작가를 아모리스트(amorist)라 한다. 진정한 아모리스트가 사랑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긴 사설이 필요할까. 일생 단 한 권의 시집으로, 흔치 않은 시선과 수사로, 오롯이 사랑을 노래한 아모리스트 에밀 아레스트럽.
에밀 아레스트럽(한센 그림, 출처. 퍼블릭 도메인)
에밀 아레스트럽(Carl Ludvig Emil Aarestrup, 1800~1856)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에 부모의 별거 속에서 혼란을 겪었고, 일곱 살 때 부모가 몇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 친척과 이웃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열아홉 살에 코펜하겐 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여, 스물일곱 살에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며 의사가 되었다. 대학생 시절 열여섯 살의 사촌 캐롤라인 아가르드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롤랜드섬의 니스테드와 삭스코빙에서 이십 년 동안 개원 진료를 하였다. 마흔아홉 살에 마침내 그가 원했던 대로 푸넨(Fyn)섬의 오덴세에서 교구의 공식 의사로 임명되어 봉직하였다.
열세 명의 자녀를 기르고 진료에 열중하면서도 어릴 적부터 해오던 글쓰기는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괴테, 하이네, 바이런과 같은 작가들의 시를 무료로 번역하는 일도 했다. 개성 있고 영속성을 지닌 시는 이러한 번잡한 일상에서 태어났다.
덴마크 문학에 낭만주의를 처음 들여온 미학 교수 아담 올렌슐레거의 영향을 받았고, 바이런, 하이네 등의 시를 섭렵했다. 물론 관능적이고 성적인 것이 중심에 자리하지만, 에로티시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외로움과 죽음과 잇닿은 우울도 어른거린다.
“이 키스 그리고 천 번의 키스를 더 받아줘 / 이 키스 그리고 천 번의 키스를 더 받아줘, 내 사랑아 / 눈으로 말해, 사랑만이 가두는 / 어리석은 목소리; 그의 사슬에 묶여 / 키스와 포옹은 죄가 아냐 / 입술이 닿을수록 / 내 생각이 텅 빌수록” -「이 키스 그리고 천 번의 키스를 더 받아줘」 전반부 (번역: 유담)
키스와 포옹이 가져다주는 온갖 기쁨에 관한 시인의 감각이 폭발하면서 텅 비고, 텅 비어서 우울도 함께 가득해지는 에로틱한 역설이다.
아레스트럽의 시에선 몸이 살아난다. 의사인 시인은 인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날카롭고 해부학적인 눈으로 사랑에 시선을 집중한다. 각 해부학적 부위의 매력을 감각적 인상으로 촘촘하게 재생하며, ‘죄다 현기증 나게 만드는’ 풍부한 은유로 사랑을 노래한다.
“당신의 입술에 마법이 있고, / 당신의 시선엔 심연이 있어, / 그리고 내 귀에 들리는 당신의 목소리에 / 꿈다운 천상의 노래. // 당신의 눈썹에 명징이 있고, / 당신의 머리카락에 비밀이 있고, / 꽃의 숨결이 흘러 / 서거나 걷거나 당신 둘레에. // 가없는 지혜가 넘쳐 / 당신의 보조개에, / 솟치는 건강의 샘이 있어 / 당신 영혼 속의 모든 마음을 위하여. // 당신 안의 세계, / 정열적이고 헝클어진 봄날 - / 도저히 잊을 수 없었던, / 내가 찬미하고 잘 아는. - 「친구에게」 전문(번역: 유담)
출판을 꺼리던 그를 작가이자 친구인 크리스천 윈터(Christian Winther)가 설득하여 1838년 말에 첫 시집 『시(Digte)』가 출판되었다. 그러나 시집은 출판 후 첫 3개월 동안 고작 40부가 팔렸다. 인체의 아름다움에 관한 관능적 묘사와 육체적 사랑의 미화가 넘치는 에로티시즘을 당시 청교도적 *쁘띠부르주아지의 자제와 고립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첫 시집이 평생의 마지막 시집이 되었다.
오덴세에서 쉰여섯 해 삶을 마감했다. 사후 칠 년 뒤, 유고 시집이 출판되었다. 낭만주의 사조에서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시인을 뒤늦게 평자들은 칭송하기 시작했다. ‘접근 가능한 시선으로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현실을 응시한 자연주의 미학자.’ ‘에로티시즘을 파편화하여 미학적 아름다움을 배양한 근대시의 중요한 선구자.’